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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쉼표를 찾고 싶다면 : 썸웨어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같이, 또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공간


글ㆍ사진  이다영




조금 늦은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경복궁역으로 향하니 퇴근 시간과 맞물려 사람들은 각자의 갈 길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우러 하나둘씩 모여드는 경복궁역의 큰 대로를 지나 골목길로, 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다 보면 어느덧 분주했던 서울의 소리가 한겹 한겹 벗겨지는 듯했다. 


처음에는 차들의 소리가 멀어지고, 그다음엔 사람들의 소리가 멀어지고, 서촌을 지나 옥인동으로, 더 안쪽 골목으로 굽이굽이 걸어 들어가다 보면 어느덧 사람들과 상점은 멀어지고 한적한 동네가 나온다. 오랜 기간 서울에 살면서 자주 왔던 동네였는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골목 안쪽으로 조용히 숨어있는 곳, 썸웨어.



육중한 검은색의 철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반은 벽돌로 쌓인 조적조와 또 반은 나무로 이뤄진 옛날식 목조주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마당과 큰 나무를 품고 있는 집에서의 하룻밤.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무 문을 통해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원래는 오는 길 한권의 서점에서 먼저 체크인 안내를 받는 형식으로 체크인이 진행되는데 이 날은 마침 한권의 서점에서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어서 숙소로 바로 비대면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큰 테이블 위 크림색 웰컴키트가 우리를 반겨줬다. 


맨 앞장에 수기로 적은 이름, 숙소에 머물면서 온전히 이 동네를 여행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된 서촌의 지도와 쿠폰북, 계절에 맞게 벚꽃이 핀 서촌의 풍경을 담은 엽서, 그리고 지내는 동안 가볍게 읽기 좋게 놓여진 한권의 책과 차, 정성껏 쓰여진 편지는 이 공간에서의 경험을 선물받은 기분이 들게 했다. 



숙소 내부의 각기 다른 모양의 나무 문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듯 더 깊고 짙은 색을 품고 있다. 아파트 키드로서 익숙해 있는 천편일률적인 철문이 아닌, 조금씩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가진 문들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작은 요인 중에 하나다.



방금 걸어온 서울의 골목길과 같이 이 가옥은 방문 하나하나를 열고, 숨은 공간들을 찾아 복도로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새로운 풍경을 선물한다. 매번 문을 열어 공간들을 확인하고 나무로 된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마다 마치 이 숙소로 오기까지 작은 여행을 이 공간 안에서 되풀이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다양한 높낮이의 단차와 나무 바닥,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마룻바닥 소리, 공간마다 다른 천장의 모습과 고풍스럽게 나이가 든 나무의 결과 색이 숙소의 곳곳을 구성한다. 전체적인 뼈대는 옛 가옥의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지만 그런 빈티지한 느낌과는 상반되게 부엌과 침구, 화장실과 같이 실질적으로 사용이 되는 곳들에는 현대적인 기기와 소품을 잘 배치해두어 편하게 머무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골목과 같은 복도를 지나 각자의 작은 집을 찾듯 우리는 각자의 마음에 드는 방을 찾았다.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지는 이 작은 집에는 총 4개의 방이 있다. 마당과 이어지는 다이닝룸뿐 아니라 각 방에는 각자의 창문이 있는데, 그 창들을 통해 보이는 풍경과 들어오는 빛 또한 다 달라서 이곳에서 머무는 하루 동안 우리는 그때그때 자리를 옮기며 전혀 다른 공간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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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커튼을 열고, 닫고, 창문과 중문을 여닫으며 이 집 안에서도 계속 새로운 풍경을 찾고,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썸웨어에는 TV가 없는데 전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저 가만히 있어도 매 순간이 가득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식을 신청하면 에디션덴마크에서 조식 키트를 준비해주는데 골목을 따라가 조식 패키지를 직접 받아오는 경험 또한 이 동네의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오픈 키친과 마주한 다이닝 테이블에서 함께 토스트를 굽고, 조식을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침에는 햇빛이 들어와 시시각각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는 다도실에서 차를 우려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2층 방에서 바로 보이는 큰 나무의 가지 사이로 작은 새들이 날아들면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새소리를 듣고, 큰 창으로 나무에 비치는 초록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보기도 한다. 



점심쯤에는 작은 마당으로 햇빛이 한가득 쏟아져 내려 든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읽을 책과 일기장을 들고 와 마당에 앉아 한참을 책을 읽기도 하고 햇볕을 쬐었다. 일본 영화 중 <녹차의 맛>에온 가족이 종종 이렇게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부러웠는데 이곳의 중문이 있는 툇마루는 그런 나의 로망을 실현해주었다. 서로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다.



썸웨어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과 경험들이 이 곳에 차곡차곡 쌓여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방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고 또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낸 뒤에는 각자의 공간으로 숨어들어 가 편하게 개인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이었는데도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굳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멀리 떨어져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을 선물해주는 곳, 분주한 서울의 삶이 벅차게 느껴질 때, 또 잠시라도 온전한 쉼을 누리고 싶을 때 다시 찾고 싶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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