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함께 사색하는 시간 : 서리어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다시는 없을

이 순간의 하늘


글ㆍ사진 고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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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하게 휘어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조금 높은 땅 위에 지어진 낮은 지붕의 집 한 채를 만나게 된다. 망설임 없이 배산임수가 생각나는 곳 '서리어' 멀리에 바다가 보이고, 등에 진 산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살면서 템플스테이는 아직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 툇마루에 앉아 산새소리를 듣다 보면 꼭 '이런 거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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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3월의 바람 온도도 완벽한 날이었다. 앉은 몸을 일으켜서 걸었다. 짧지만 걷기 좋게 조성된 산책길이 매일 이곳에 머무르고 싶도록 했다. 내 걸음에 부대끼는 돌멩이 소리와 허공을 빗자루질 하는 나뭇잎 소리는,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저 산등성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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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내 등에 매달려 있는 짐을 내려놓으려 툇마루로 돌아섰다. 가지런히 정돈된 슬리퍼들 중에 하나를 빼내면서, 내 신발을 그 자리에 채워 놓고 '서리어'의 문을 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터져 나오는 오후 햇살 때문에 감탄을 먼저 뱉었다. 동서양 어디든 모든 건축물에서 중요시 여긴다는 재료 '빛' 시간이 지날수록 낮게 누우며 더 길게 안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나 역시 사진의 재료로 삼아서 보니, '서리어'가 가진 방위에 욕심까지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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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소리가 들리는 쪽으로는 방충망만 한 겹 가리고 바람을 들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쏟아지는 햇살의 따뜻함을 공간에 가득 채웠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아마 가장 그 모든 계절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 정말 최고다." 식상하게도 자주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 나조차도 이젠 쑥스러워져 안타깝지만, 꼭 다시 하나만 정하라면 '서리어'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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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햇살 특유의 불그스름한 색깔을 천천히 보다가, 주방 한편에 놓인 핸드드립퍼에 시선이 멈췄다. 누구라도 마시든지 말든지 커피 한 잔을 내리면 좋을 것 같았다. "커피 한 잔 내려줄래?" 감히 부탁해야 했던 건, 지금 이 공간 전반에 퍼져있는 색과 분위기에 폭 싸여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가슴팍쯤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아지랑이도 좋겠지만, 조금 뒤로 물러나서 이 모든 걸 함께 보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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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없을 이 공간의 이 시간 '서리어'의 그날은 유달리 빛이 좋았고, 저녁엔 바닷가 노을이 초 단위로 떠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물감을 짙게 칠한 하늘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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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어'에서 제공하는 사색 안내서 3장 중 '바라보다'장에는, "노을이 서린 너른 밭을 바라보는 첫 번째 사색 시간입니다. 함께 식사나 술을 곁들이며 평온한 풍경을 즐겨보세요. 오가던 대화 소리가 멎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올 때, 일상에서 벗어나는 서리어 만의 특별한 경험이 시작됩니다."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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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완벽하게 그 장을 완성하던 시간이 찾아왔던 거다. 우연의 일치에 매우 감탄하여 이 장을 마음으로 따랐다. 우리는 따로 마련된 다실로 자리를 옮겼다. 노천탕에 뜨거운 물을 틀어둔 채였다. 그곳에선 대화를 나눴다. 역시 제공되는 사색 안내서의 '대화하다'장을 그대로 닮아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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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에서 내린 차는 아직 다 지지 않은 노을을 그럼에도 아쉬워하며 바깥으로 가지고 나왔다. 이대로 노을이 다 떠나고 나면, 미련 없이 노천탕에 몸을 녹이자고 했다. 떠나지 않은 아름다운 것에 차마 등을 질 자신은 없었던 것 같다. 이내 낮과 달리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밤 기온이 노천탕의 물을 좀 더 쉽게 만들었고, 그 안으로 후련하게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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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 가장 솔직할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절대 못 내비칠 것 같던 진심을 말하게 해준 곳. 우리는 생각을 하다 눈물이 나기도 했고, 후련하게 한숨 내쉬어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마음의 준비보다는 용기가 더 필요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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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 앉아, 머리맡 책 한 권을 집어 펼쳤다 바로 접으며 뒤로 아무렇게나 누웠다. '서리어' 안에서였기에 꺼내볼 수 있었던 용기가 아니었나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공간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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