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충분해
ㅡ지향의 깜짝 이벤트ㅡ
어제 마무리한 글이 너무 사랑스러운 느낌이라(ㅎ)
연휴 중에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날을 정해 발간하기로 공지했었는데…
자유로운 지향에겐 맞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ㅡㅡㅡㅡㅡ
남편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지금 보다 조금 더 의미 있게, 잘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신이랑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지금 이대로 충분해."
말을 꺼낸 나도 살짝 황당스러웠다.
너무나 단순해서 어쩐지 현실감이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문득, 지난 삶이 스쳐 지나갔다.
젊은 날에도 우린 함께 먹고, 함께 잤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나와 너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우리는 존재가 아니라, 역할로 서로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지
존재를 누리게 하는 힘은 아니었다.
그래서 함께 밥을 먹어도 무언가 더 필요했고
같은 방에 누워도 마음은 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던 것은 관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뿌리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주 조용히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조각난 개인이 아닌, 대 자연과 촘촘히 연결된 존재를 알아차리면서 시작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특별한 이유 없이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옆의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남편은 나를 채워줄 사람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은 하루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명이 생명을 바라보는 순간이 되었고,
같은 공간에 잠드는 일은 피로의 끝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작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특별해진 것이 아니라, 존재가 본래 그러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본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지금처럼 이면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함께 먹고, 함께 잠들고, 함께 늙어가며
존재가 존재를 누리는 시간으로 살아가자고.
어쩌면 의미 있는 삶이란 무언가를 더 이루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존재의 신비를 마침내 받아들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