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이 고통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추어 섰다.
사건이나 상황 자체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라서인지,
그 말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스며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행복을 주는 사건과 고통을 주는 사건이 따로 있다고 믿었다.
좋은 느낌은 붙잡으려 애썼고
나쁜 느낌은 피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렇게 매 순간 삶을 가리고, 고르며 살아왔다.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피해야 할지 끊임없이 살피는 그 긴장이 삶의 에너지를 몽땅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삶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때, 에너지는 새지 않고 삶은 오히려 더 깊고 다채로워진다는 것을.
매 순간이 이미 신성하다는 사실도.
지나간 나의 고통은 삶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나의 저항 때문이었음을 조용히 돌아보았다.
그 생각이 생명수처럼 내 안으로 스며들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세포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굳어있던 긴장이 하나, 둘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삶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은 어디론가 도달해야 하는 여정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한 자리였다는 것.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삶이 다시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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