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신 앞에서
막내의 가벼운 자동차 접촉 사고 소식을 들었다.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나는 말했다.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내 안에서 한 목소리가 올라왔다
"다쳤다면?"
잠시 후엔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죽었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잠시 멈춰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곧 편안함이 스며들었다.
이미 일어난 일 앞에서는 더는 밀어내거나 붙잡을 수 없다는 걸 몸은 먼저 알아차린듯 했다.
오래 전, '현실이 신'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듯 멍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실이라는 신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했던 젊은 날들이 그제야 비로소 이해되었었다.
밤낮으로 가족의 평안을 빌던 옛 어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마음을 성스럽게 까지 여겼던 시간들도.
나는 자식의 안녕을 붙들고 늘 노심초사하시던
내 어머니의 삶에서도 조금 비켜 서 있었다.
그 때, 죽은 짐승의 박제 처럼 멈춰 서 있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었다
더 안전하기를 바랄수록 이미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지 못히는 그 역설을
나는 충분히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귀하디 귀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사건도 사고도 없는, 평탄하기만한 삶을 기도하듯 바라지 않게 됨에 조용히 감사한다.
차라리 지금,
팽팽하게 가슴 뛰는 삶이기를 바란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
죽음마저도 가두지 못하는
근원으로 부터의 생명임을 문득 자각한 이후 부터였다.
생성과 소멸을 숨쉬는 장엄한 순환 속에서
'내 것'이라는 긴장으로 움켜쥐기 보다,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는 이 생생한 떨림에
조용히 응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