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맛
강원도로 떠나온 지 십수 년이 훅 지나갔다.
처음, 전원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실내보다는 주로 야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데크의 파라솔 아래, 잔디 정원의 테이블 텃밭에서, 그리고 주변의 산들을 쏘다녔다.
차 한잔을 마시든, 식사를 할 때든 매번 쟁반으로 먹거리를 나르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의 정취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름밤엔 들마루에 누워, 이슬에 이불이 젖을 때까지
밤하늘과 풀벌레 소리를 즐겼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연에 물들어 갔다.
이년 전부터는 남편의 허리 부담으로 텃밭 농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야외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자매들과 함께 하던 김장 이벤트도 멈추었고 산행도 어려워졌다.
나 역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차나 음식을 밖으로 나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서글프거나 쓸쓸하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남편과의 관계처럼 자연과도 달달한 허니문을 지나
속 깊은 또 다른 맛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모두 자연 안에 있는 느낌이다.
어디에 있든, 대 자연과 연결돼 있는 감각이 흘러들었다.
이런 행운에 놀라고 감사하게 된다.
자연엔 본래 경계가 없는데
인류는 경계를 만들고 이름을 붙여 왔다는 사실을 자꾸만 알아차리게 된다.
하늘땅 바다 국가 동물 사람 꽃… 등
당연하게 여겼던 구분들이 그저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수록 우주와 연결감은 더 또렷해진다.
하나의 눈이 열리면 또 다른 눈이 열린다.
양파 껍질처럼 벗기고 벗겨도
끝없이 자신을 탐색할 수 있다는 건,
하늘의 선물이자 위로이다.
이 통찰의 눈을 뜨도록 도왔던
'오쇼'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하는 신비이다"
이런 자각이야말로
내 삶에 터진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