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지 않고 서는 법
막내딸이 몇 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의
결혼 계획을 조심스레 꺼내며 내 의향을 물었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늘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물었다.
"결혼하려는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해줄래?"라고.
첫 번째 이유는 안정'이었다.
다시 물었다.
"제도적 결혼이 정말 안정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딸의 얼굴에 잠시 곤혹스러움이 스쳤다.
나는 사랑하는 딸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패턴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가슴이 뛰는 삶이기를,
자신과 치열하게 마주하는 삶이기를.
그래서 삶 그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이 되기를 응원한다.
다음 날,
남편과도 결혼과 안정에 대해 나누었다.
우린 사회가 정해준 대로 결혼도 하고,
고 성장 시대를 통과하며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래서 지금 정말 깊은 안정 속에 살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남편 마음 한 켠의 헛헛함을 알기 때문이다.
가정 결혼 직업 소유가 주는 안정감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얇은 막 같은 것임을 삶으로 배우고 익혔다.
부모들의 삶에서,
수많은 드라마의 절정과 파국에서 똑같은 패턴을 숱하게 보면서도 우리는 또 그 속으로 뛰어든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깊은 안정감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기대는 안정감이 아닌,
무한으로 뿌리내린 <존재>로서의
안정감이라는 울림을 듣는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서로를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신성한 존재로서의 안정감이야말로
내가 딸에게 챙겨주고 싶은 '최고의 혼수품'이다.
하지만 나는 딸에게 말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만 너의 결정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기뻐할 거야.
네 삶은 너의 것이니까.
우린 오랫동안
말없이 마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