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쉬어가라 할 때

선물

by 지향

저녁 어스름이 사방을 물들일 무렵,

라이트를 챙겨 자전거를 타고 나서는 시간이

내가 즐기는 고요한 틈이다

광활하게 열리는 하늘과

겹겹이 이어지는 짙푸른 산천,

시시각각 빛을 바꾸는 저녁노을,

이미 떠있는 초승달,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경쾌감은

하루도 빼고 싶지 않을 만큼 나를 이끈다.

한 달쯤 전,

그 자전거 길에서 이웃 한 분을 만났다.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

교직 퇴임 후,

고향에 내려와 농부로서 제2의 삶을

살고 계시던 분이라 잠시 마음이 멈췄다.

몇 번인가의 만남을 가졌었고,

장남과 맏형으로서 모범적인 삶의 태도가 기억에 남았던 분이기도 하다.

뇌졸중 증세로 처치를 받았고,

술 담배와 농사일을 내려놓은 채

이제는 매일 걷기와 섭생으로

몸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자전거 길에서 마주치던 그분이 보이지 않으면

왜 안 오셨는지 문득 궁금했다.

그분도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못 본 다음 날이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술과 담배를 끊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실컷 해봤으니 이젠 미련이 없어요"

그 말은

나의 오래된 고백과도 조용히 겹쳐졌다.

'실컷 어리석게 살아봤기에 두 번 다시 어리석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삶의 고백이니 말이다.

어느 순간,

이 시간이 하늘이 그분께 쉬어 가라 건네는

귀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일과 술, 담배로 저만치 밀쳐두었던

자신을 이제는 마주하라는,

분명한 신호처럼 내게는 와닿았다.

자신의 깊은 속을 만나 귀 기울이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닦아주는 시간,​

자신을 존귀한 존재로 알아보고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계가 세워지기를 바래본다.

해묵은 감정과 번뇌들이 하나 둘 풀려 나갈 때,

몸은 자연스레 자기 회복의 속도를 되찾는다.

걷기와 섭생은 그 흐름을 돕는

조용한 동반자일 뿐이다.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하는 삶을

잘 사는 인생이라 말하는 이 시대 속에서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기 자신과 다시 사이를 맺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늘이 쉬어 가라 할 때,

그 자리에 머물 줄 아는 것

그 또한,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귀한 능력임을

나는 이 길 위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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