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새 정부가 들어서고, 도시 곳곳의 집값이 다시 꿈틀거린다는 뉴스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 소식이 아직 머리 속에 있던 지난 주,
오래된 지인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앉아 이야기 꽃을 피려던 순간,
한 지인이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낮추며 말을 꺼냈다.
" 오늘… 사실은 여기 올 힘이 나지 않았어.
지향 언니가 강원도에서 오랜만에 와서…
가까스로 기운을 낸거야."
그녀는 지금 살고 있는 전세집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집 주인이 이사 비용 까지 줄테니 집을 비워 달란다며.
올라버린 집값 때문에 옮겨 갈곳을 찾기가 막막하다고 했다.
그리고 혼잣말 처럼 덧붙였다.
"아무래도…내가 잘못 산것 같애."
우리는 오랜 시간 아이들 학부모 모임으로 만나며,
서로의 가정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가정은 부자 사이의 신뢰와 사랑이 유독 인상적이었었다.
여느 집에서 보기 힘든 따뜻한 관계였다.
달리 흠잡을 곳이 없는 그들의 삶에서 굳이 말하자면 재테크 촉이 없는 것 정도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그날 이후
그녀의 독백이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 아무래도… 내가 잘못 산것 같아."
그녀의 한숨이 내 마음을 계속 따라다녔다.
가족의 보금자리 라는 가장 기본적인 '기본권'이
투기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의 성공의 발판으로
둔갑한 구조가 기막힌 느낌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구조 속에서 정말 난 아무 책임도 없을까?"
사회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판 위에서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조용히,
그리고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문득, 안개 처럼 흐릿했던 사회적 현상들이
갑자기 또렷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정 학교 사회의 권위자들이 하나 같이,
겉은 번듯한데
정작 신뢰와 존경이 무너져 버린 원인이
결국 이 구조와 맞닿아 있음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또한 가질수록 만족 대신, 욕망의 화신이 되는 이유도 이 구조로 충분한 답이 되고 있었다.
타인의 결핍과 고통 위에 쌓은 풍요가
나를 편안하게 할수 있는지,
나를 더 깊게 만들고,
더 따뜻하게 만들고,
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알았다.
이 슬픔은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시대가 앓고 있는 우리 모두의 상처라는 것을.
다시 묻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