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한 나를 대하는 방식
남편은 종종 내게 나이 듦의 헛헛함과 서글픔을 토로한다.
그럴 때면 난 조용히 듣고 공감한 뒤,
모르는 척 그 이유를 묻는다.
몸의 불편한 곳이 늘어나고
자신감도 예전 같지 앓아서란다.
나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뉘앙스가 늘 따라온다.
짠한 마음이 인다.
마치 부속품이 마모되어 쓸모를 다하면
폐기 처분되는 기계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유난히 일찍부터 존재의 헛헛함을 앓았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사회가 내세우는 가치들에
의심과 회의를 거둘 수가 없었다.
가정 학교 사회가 오직 '생산성' 하나를 향해 질주할 때, 난 함께 올인하지도 담대하게 이탈하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배부른 자의 게으름,
혹은 반골 기질 정도로 여기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시간에 깊이 감사한다.
그 회의와 고뇌 덕분에 지금, 헛헛함 대신
기쁨과 감사로 채워진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삼사십 대 무렵쯤 읽었던,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한 사람의 참 가치는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일 때의 존재의 태도와,
가장 무력한 자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그때의 나는
가장 무력한 자를 외부의 타인으로 이해했었다.
그러나 삶은 그 무력한 자가 외부의 타인이기 이전에 바로 자신임을 수없이 마주하게 했다.
나는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판단했고,
돌보기보다는 괴로워했다
그 어리석음 속에서 가정과 사회가 공유해 온,
집단 무의식을 이해하는 작업이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온 우주와 맞닿는 작업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흐르는 생명임을 누리며 산다.
이제는 안다.
생명의 참 가치는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일 때의 태도와
가장 무력한 자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그 의미를.
바로 그 자리에서만 열리는,
순수한 기쁨의 열매를
나는 오늘도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