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가벼운 저녁을 마치고
어둠이 온 세상에 내려앉는 밤이면
나는 남편과 물길을 걷는다.
휘영청 밝은 달 빛,
겹겹의 산으로 둘러싸인 물길은 숨이 멎을 만큼 깊다.
물 위로 달빛과 장엄한 산이 그대로 드리워져 있다.
차 소리도, 사람의 발자국도 사라지면
낮엔 좀처럼 들리지 않던 물소리가
비로소 몸속으로 스며든다.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다.
새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
야성의 기운뿐이다.
걷는 내내,
보이지 않는 정화의 기운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마음속의 소란이 씻겨 내려가고
어느새
내 가슴 한가운데도
같은 고요가 자리한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곳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중심이다.
그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찾았던 나를 만난다.
깜깜한 어둠 속에도
빛 만큼이나 강력한 번뜩임이 있다.
완전한 고요 속에서도
울림은 멈추지 않는다.
그 밤,
나는 그저 걷고 듣고 숨을 쉰다.
그리고,
이 고요에 물든다.
이제 나는 안다
나 또한
고요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