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전원에 처음 머물던 시절, 난 해 질 녘마다
테라스에 앉아 앞 산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큰 바위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전설을 품은 바위를 바라보며 자란 어니스트가 결국
그 얼굴을 닮아갔듯,
나 역시 매일 마주하는 큰 산을 닮을 것만 같은 벅찬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의 감동을 남편에게 들려주려
달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거의 매일 찾아가는 아기 유튜브 채널이 있다.
신생아 때 우연히 보게 된 이후, 돌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 아이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얼굴은 날 웃게 만든다.
떼를 쓰거나 짜증 내는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
그 비결이 뭘까 유심히 들여다보던 중,
아기의 웃음은 엄마 아빠의 웃음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 전원주택을 선택할 때, 이미 정돈된 마을 보다 숲과 산이 둘러싼 거친 공간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그 선택은 멧돼지나 고라니 너구리 같은 이웃들을
기꺼이 환대해야 하는 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숲을, 산등성이를,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매일 바라보는 일상이 되었다.
밤이면 별과 달을 올려다 보고,
바람과 물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오래전 '큰 바위 얼굴'을 사모하던 어니스트처럼,
산을 닮아갈 것 같은 영감으로 가슴이 뛰던 그날,
그 나의 사랑 고백과 함께,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다.
위대한 자연은 메말랐던 내 가슴에
날마다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다.
하루하루, 나의 숨결은 숲의 리듬을 닮아가고 있었다.
광활, 장엄, 영원, 순수…
나의 의식은 조용히 그러나 담대하게
우주를 향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산의 고요와 침묵을 품은 나만의 동굴 속에서 자고 깬다.
나는 대자연 속으로
대자연은 내 속으로 걸어와
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