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
58세의 조카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신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조카가 젊은 날엔 치열하게 살다, 이제야 좀 자유롭고 편안한 시간이 되었는데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맘이 아렸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성찰하기보다, 신의 불공평을 먼저 떠올리는 남편의 투정이 귀엽게 들렸다.
그리고 문득,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신과 이어지는 신성을 넣어
그의 품인 무한 세계로 초대한, 그분의 슬픈 사랑이 떠올랐다.
마치 생명을 나눈,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작은 오해로 어긋나 틀어진 관계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인류의 문화는 존재의 비밀 보다
바깥의 풍경에만 몰두했음을 알고 있다.
그 비밀의 핵심이 '참된 나' 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표면만 바라보는 눈길로는,
그분의 공평한 사랑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있다.
나 또한 생명의 신비는 외면한 채,
내일을 기대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묻곤 했었다.
"신은 왜 고달픈 인생을 주셨을까?"라고.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난 남편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난 공평한 신께 감격 중이야."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는 사랑,
만물 속에 고르게 스며있는 그분의 숨결.
무소부재'라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아닌,
감각으로 다가와 늘 벅차는 가슴을 나누었다.
꽃은 피고 지고,
장성한 나무는 제때 쓰러지고,
여름을 노래하던 수많은 생명들은
찬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오직 인간만이
그 흐름에 '죽음'과 '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 때문에 슬퍼함을 알아차린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흐르는 신비 속,
공평한 그분의 사랑에 목이 메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