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함께 살았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

45년 지기 내 친구

by 지향


내겐 소중한 친구가 있다.

45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이다.

부모 보다 형제자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기쁠 때도 힘들 때도 늘 곁에 있었던 사람이다.

우리는 참 많이 부딪쳤다.

살을 에일만큼 아픈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도망칠 수 없었던 소중한 인연이었기에, 대신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난 나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만날 수 있었고, 자신과 간극 없는 절친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나라고 여겼던 단단한 고치 속을 빠져나오자 자신을 넘어, 날 수 있는 날개도 함께 나와 있었다.

나도 남편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는 작은 형과 동생이 대학을 다닐 때, 일찍이 학업을 포기하고 큰 형님을 도와 가정 경제를 꾸리며 돈에 일찍 눈을 떴던 것 같다.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였다.

젊음을 바쳐 일했고 마침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만들어냈다.

지금 내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은 그의 땀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늘 인색한 사람이다.

자신을 바라보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나는 가끔

그의 깊은 공허를 바라본다.

그는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태어났다.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서 배가 남산만 한, 가난한 한 여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먹먹해진다.


그 뱃속에서 내내 긴장과 공포에 시달렸을 쪼그마한 생명을 느껴본다.

내 눈가가 촉촉해지며, 혼자 중얼거린다.


"내 친구의 고치 속은 여전히 전쟁의 상흔 속인 지도 몰라"


어쩌면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 보다 삶을 먼저 책임져야 했던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마음 어딘가에는 아직도 쉬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를 배우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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