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장엄함
겉으론 화려한 명성과 갈채를 받을지라도 폐허같은 마음의 정원에 사는 이들이 있다.
혹은 비록 폐가 처럼 초라한 집에 살지만 수려한 마음의 정원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나는 이런 생명의 아이러니가 늘 흥미롭다.
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온 우주와 연결된 존재가 겨우 사회적 소시민으로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는 동안, 내 영혼은 오래도록 울고 있었다.
'미운 오리 새끼'등의 드라마틱한 서사들이 말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강력하게 끌렸던 적이 있다.
그러나 파고들수록 길은 더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나의 애절함이 신의 가슴을 흔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가 개념임을,
말이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아차리면서 '나'라는 분리가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리고, 나는 고백하고 있었다.
<한번도 그 근원과의 연결이 끊겼던 적이 없었음을>
나는 지금, 오대양 육대주의 광활한 품에 안기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아마존의 침묵 속에 눕고,
히말라야의 설산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오로라를 쫒아 아이 처럼 달리고
이과수 폭포 무지개 앞에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심연의 바다로 잠수해
이름 모를 생명들과 함께 헤엄친다.
끝없는 대양과 하늘,
별빛이 쏟아지는 어둠 속에 그저 머문다.
이 황홀한 마음의 정원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난 이제 안다.
아무리 많은걸 소유하고 성취한다해도,
가슴의 중심을 정확히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존재는 결코 진정되지도 만족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존재의 장엄함을
가만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