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내인생에 관심이 생겼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의욕이 줄어든 것 같고,
열정이 식은 것 같고,
괜히 자꾸만 멈춰 선 기분이 든다.
해야 하니까 준비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따라오지 않는 느낌.
다가오는 시간 앞에서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게 되는 오후.
어린 시절의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이런 오후가 며칠만 이어져도 불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를
권태라고 부르거나,
무기력이라고 부르거나,
어쩌면 소진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젊은 날의 나는
열정에 의해 움직였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스로를 당겨 속도를 만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책임에 의해 움직인다.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자리,
맡은 역할이 등을 떠민다.
그때까지는
마음이 조금 비어 있어도
충분히 앞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나이에 이르면
달라진다.
이제는
정말 원하는 것만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설득으로는 오래가지 않고,
의무만으로는 힘이 붙지 않는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는 타협은
생각보다 빨리 식어버린다.
대개 처음엔 이 변화가 두렵다.
나태해진 건 아닐까,
의욕이 사라진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의욕의 감소라고 말하지만,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에너지가 줄어든 게 아니라, 아끼려는 거야. 아무 데나 막 쓰이지 않겠다고 몸이 스스로 걸어 둔 절약 모드 같은 거지.”
그래서인지
새로운 의욕을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감정을
천천히 살핀다.
내 마음을
쿵, 하고 울리게 하는 것들.
아주 작아도 좋다.
설명하기 어려워도 괜찮다.
어떤 문장,
어떤 태도,
어떤 공간의 공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많이 하는 쪽이 아니라
정확히 움직이려는 쪽으로 기운다.
속도는 느려지지만
방향에는 예민해진다.
그래서 이 시간을
섣불리 무기력이라고 부르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지금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시기가 아니라
덜어내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열정이 자신을 끌고 가던 때를 그리워하지만,
이제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이 시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멍하니 있는 그 순간조차
어쩌면
다음 방향을 고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