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야기
한 사람은 현금을 갖고있고 다른 한 사람은 주식을 갖고있다. 갓 내린 커피를 사이에 두고 그 둘은 마주 앉았다. 한 사람은 Illy 디카페인을, 다른 한 사람은 Starbucks 에티오피안을.
이틀의 큰 낙폭이 얼마 안되는 한 달 치 수익을 순식간에 지웠다. 시장이라는 시계는 가끔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시간을 되감는다.
전쟁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지만, 주가는 곧장 숫자로 반응한다. 몇 줄의 속보가 차트를 꺾고, 지도 위의 점 하나가 계좌의 색을 바꾼다. 최근의 긴장은 미국, 이스라엘, 이란 사이에서 시작됐고, 시장은 그 파장을 먼저 계산했다.
자금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
현금을 가진 사람은 ‘기다림’을 선택한다.
반등의 골짜기를 상상하며, 더 좋은 가격을 꿈꾼다.
이 기다림은 능동적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택권을 손에 쥐고 있다. 오르기 시작하면 살 수 있고, 더 떨어지면 더 좋은 조건을 노릴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벽 수산시장으로 향하는 식당 주인과 비슷하다.
오늘은 어떤 생선이 들어올지, 얼마나 싱싱한 놈을 싸게 들여올 수 있을지 기대한다. 잠은 설칠 수 있어도, 마음에는 설렘이 있고 기회가 있다.
주식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
주식을 그대로 보유한 사람의 기다림은 다르다. 이미 선택을 끝낸 상태에서 결과를 기다린다.
반등하면 안도할 것이고, 더 하락하면 버틸 것인지, 손절할 것인지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기다림은 수동적이다.
선택권은 제한적이다. 계좌 안의 자산은 가격이 회복되어야만 심리적 자유를 준다.
두 사람 모두 잠을 설칠 수 있다.
한쪽은 ‘설렘 속에 가능성’을, 다른 한쪽은 ‘불안 속에서 희망’을 들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자산이 같다면, 심리적 비용이 더 낮은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주식을 매도하고 나면 현금이 생긴다. 지난 한 달의 달콤함이 잊히고, 서서히 불안함이 사그러들면서, 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지난날들의 여러 선택 속에서 무난히 잘해온 자신을 믿고 다시 골짜기를 기다린다. 마치 어릴 적 가을 운동회에서 출발선에 선 기분처럼. 비록 잘 달리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것은 기분 좋은 떨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필로그
시장은 개인의 합 이상이다.
누군가는 불안 속에서 팔고, 누군가는 믿음으로 버틴다. 그러나 가격은 의지가 아니라 결과다. 애국심이라기보다는 실적과 신뢰, 투명한 제도와 시간이 쌓아 올린 축적의 산물이다. 전량 매도는 비겁함일 수도, 냉정한 리스크 관리일 수도 있다. 보유는 용기일 수도, 낙관에 대한 조용한 베팅일 수도 있다.
결국 시장에는 두 종류의 기다림이 있을 뿐, 도덕적 우위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표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골짜기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