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불금

의식주, 문화권, 그리고 이동권까지

by 해피나우

여기도 불금이란 단어가 있을까?

적어도 그 비슷한 개념은 있겠지. 토요일 자정이 지난 지하철 1호선. 소란스러운 10대 20대가 끊임없이 타고 내리는 걸 보면. 평일엔 자정 넘어 끊기던 대중교통도 금토일에는 한참을 더 운행한다. 나이트 버스라는 게 있어 간격은 있어도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을 밤새 실어 나른다.


비엔나에 살다 보면 한 가지 인상을 받는다. 이 도시는 ‘기본적인 삶’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꽤 오래 고민해 온 곳이라는 느낌이다.


이동권

가장 먼저 체감되는 것은 이동이다.

작년겨울까지만 해도 연간권이 350유로. 편도 1회 2.5유로를 생각하면 5분의 1 가격이다. 다른 말로는, 하루 1유로면 비엔나 전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노인, 학생에게는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 적용된다.


토요일 자정이 지난 지하철 1호선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다. 문이 열릴 때마다 소란스러운 10대와 20대가 타고 내린다. 웃음과 음악, 가벼운 농담이 객차를 채운다. 평일이라면 이미 끊겼을 시간인데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대중교통이 한참 더 달린다.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도 밤의 도시를 누빌 수 있도록. 누군가는 이것을 ‘이동권’이라고 부른다.


문화권

문화도 비슷한 방식으로 열려 있다.

미술사박물관의 경우, 세 번 입장료면 연간회원권을 살 수 있다. 99유로 하는 ”분데스카드“ 한 장이면, 비엔나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스무 곳을 1년 내내 드나들 수 있다. 모딜리아니, 뭉크, 클림트, 에곤 슐레, 그리고 수많은 성화들. 바쁜 삶까지 고려하여, 요일을 달리하여 밤 여덟아홉 시까지 문을 열어 놓는다. 해가 지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여기서 말이다. 퇴근길에 좋아하는 그림 앞에 앉아 30분도 좋고 1시간이면 더 좋고 지친 하루를 차분히 내려놓을 수 있다.


오페라 하우스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5유로면 서서라도 공연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까지. 음악과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남겨둔 공간이다.



한참 공연이 이어지던 중 고개를 돌려 객석을 둘러본 적이 있다. 이층 베란다석에는 작은 망원경을 든 숙녀들이 보이고, 뒤편 중앙 난간에는 빈 음대 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몸을 살짝 기대 선 채 무연한 얼굴로 아리아에 잠겨 있다. 무대의 강한 조명이 그들의 얼굴을 고루 비춘다.



먹고사는 권리

주거 역시 그렇다. 소득이 낮은 가구를 위한 임대아파트가 일반 월세의 3분의 1 가격에 평생 계약 수준으로 제공된다. 그것도 도시 외곽이 아니라 각 동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먹는 문제도 완전히 시장에만 맡겨 두지 않는다. 여느 기본 빵 3분의 1 가격이면 먹을 수 있는 젬멜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돈이 모자라도 ‘밥’은 굶기지 않겠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계약이다. 하루가 끝날 무렵, 크고 작은 슈퍼에서는 팔고 남은 신선식품을 골고루 한 박스에 담아 3~5유로에 내놓는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집어 갈 수 있게 계산대 밖 한쪽에 놓여 있다.


한날은 산책하다 탐스런 과일이 담겨있는 박스가 눈에 들어와 걸음을 멈췄다. 상태를 확인하고는 계산을 하려니 마감 중이니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하였다. 매직으로 크게 써 놓은 가격표는 어쩌면 그것들이 필요한 이웃의 체면을 지켜주려는 가게 주인의 따듯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권

의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지 않은 공보험료만 내면 무료로 치료는 받을 수 있다. 편리함은 한국에 비할 바 못되나, 크게 아프거나 다쳤을 때 누구나 돈 때문에 병원 문턱에서 돌아서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이렇듯 이곳은 의식주만이 아니라 이동권과 문화권, 그리고 의료권을 삶의 기본권으로 생각한다.


토요일 밤늦게까지 달리는 지하철과 트램 그리고 버스. 적은 돈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저렴한 교통권과 임대주택, 그리고 가게 한쪽에 놓인 3유로짜리 식품 박스까지.


이 도시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최소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이러한 삶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어쩌면 좋은 사회란 거창한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이 일상의 작은 장치들로 조용히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