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는 세상

영화 [컨택트 Arrival]를 보고

by 해피나우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은, 우선 말하는 사람이 생각을 적당한 단어들로 바꾸고 정렬해서, 시간 순서대로 하나씩 입으로 말하고, 듣는 사람은 역순으로 귀를 통해 단어의 행렬을 순서대로 듣고 생각으로 바꿔서 인지하는 순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에 갇혀 있는 말

우리는 시간을 흔히 흐르는 강물이나 굴러가는 바퀴에 비유한다. 아침이 오면 오늘을 시작하고, 저녁이 오면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의 언어는 철저히 시간의 순서를 따른다. '안'이라고 내뱉은 다음 '녕'이라는 소리를 덧붙여 인사를 완성한다. 앞선 소리가 죽어야 뒷소리가 태어나는, 철저한 인과율의 세계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마음은 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된다. 해야 할 일은 늘 '미래'라는 이름의 선반 위에 놓여 있고, 후회는 '과거'라는 서랍 속에 갇혀 있다. 우리는 현재라는 좁은 틈새에 서서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거나 오지 않은 것을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제목: 컨택트 (Arrival)

감독: 드니 빌뇌브

주연: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

장르: SF, 드라마, 미스터리

개봉일: 2017년 2월 2일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

영화 「컨택트」 속 외계인들의 언어는 신기하다. 그들은 문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내려가지 않는다. 원형의 문양 안에 시작과 끝을 동시에 담아낸다. 그들에게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한 폭의 풍경화를 볼 때, 왼쪽 나무를 먼저 보고 오른쪽 호수를 나중에 본다고 해서 나무가 과거고 호수가 미래가 아닌 것과 같다. 그림 속에서 모든 요소는 그저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두어 걸음 물러서면 전체가 보인다.


만약 우리 삶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린다면 어떨까.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약도, '이미 늦었다'라는 서글픈 탄식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곳에서는 서두를 필요도, 무언가를 뒤로 미룰 이유도 없다. 모든 순간이 이미 하나의 거대한 그림 속에 배치된 필연적인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찰나를 영원으로 바라보는 법

시간이 없는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본다면, 일상은 전혀 다른 질감을 갖게 된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창가로 스미는 오후의 햇살, 사랑하는 사람의 무심한 눈빛. 이것들은 다음 장면을 위해 스쳐 지나가는 소모품이 아니다.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기회가 되면"이라며 행복을 유예한다. 하지만 시간의 벽을 허물고 보면 '나중'은 없다. 오직 '지금 이 장면'이 있을 뿐이다. 삶이라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오늘이라는 색깔이 칠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려져 있는 그림의 한 부분을 우리가 이제야 발견하며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을 대하는 태도

힘이 들거나 조급함이 차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시간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본다. 그러면 한결 차분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벽에 걸린 큰 그림을 감상하듯이, 시선을 옮겨 다른 구석을 들여다보고, 바짝 다가가 붓자국을 살피기도 한다. 그러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물러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전체를 바라본다. 그렇게 보고 또 보는 사이, 오늘의 힘듦은 끝까지 해결해 내야만 사라지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을 더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 한 번 눌러 그린 어두운 색의 붓터치처럼, 이미 내 삶 속에 있어왔을 한 부분이 된다.


오늘 하루는 어쩌면 우리가 써 내려가는 일기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점의 그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장면을 찬찬히, 그리고 깊게 음미하는 것. 그것이 시간을 넘어 삶을 온전히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에필로그


007 문레이커의 왕복우주선, 전격 Z작전의 자율주행차, 그리고 AI. 영화의 상상이 자주 현실이 되는 걸 보게 된다. 이제 겨우 AI 덕분에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는가 싶었는데, 어쩌면 머지않아 영어뿐 아니라 ‘언어’ 자체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미 우리는 많은 감정을 손짓과 눈빛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교환해 오고 있다. 말보다는 느리고 부정확하고 그래서 오래고 깊은 교감의 상대에 국한된 언어이긴 하다. 물론 이 영역을 전문적으로 고도화시킨 팬터마임이라는 장르도 있었지만.


지금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시간 순서대로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생각을 전하는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마치 프로토타입 모델이 연구소 생활을 마치고 일상으로 들어가 상용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때면, 생각을 굳이 언어로 통역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말로 할 때가 좋았지’ 하며 ‘옛날’을 그리워하겠지? 어쩌면 취미로 ‘말하기 클럽’이 생길 수도... 거기서는 직접적인 생각 전달을 못하게 한 후, 생각을 적당한 단어들로 바꾸고 정렬해서, 시간 순서대로 하나씩 입으로 말하고, 사람들은 또 시간의 역순으로 귀를 통해 듣고 생각으로 바꿔서 인지하는 게임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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