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비뚤한 발자국들을 믿고 자율주행
강을 따라 난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양쪽에 심어진 가로수들이 가지를 촘촘히 맞대고 있어 마치 두 하늘이 서로를 향해 덮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길은 곧고 평평한 아스팔트였습니다. 특별히 신경 쓸 것도, 발을 조심히 디딜 이유도 없는 길이었지요.
조금 걷다 보니 무료해졌습니다.
그래서 장난처럼 몸을 돌려 뒤를 보며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등을 가는 방향으로 두고, 고개만 살짝 돌려 저 끝을 한 번 확인한 뒤 한 걸음씩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길이 반듯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 자율주행을 믿는 것처럼.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로 걷는 일이 어쩐지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앞으로 걸어가지만, 사실은 이미 지나온 길을 보며 걷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경험을 떠올리고, 기억을 더듬고, 이전에 겪었던 일들을 기준 삼아 다음 발을 내딛습니다. 마치 뒤를 보며 걷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계속 등을 뒤로한 채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걸어온 길이 대체로 반듯했기 때문이었거나, 크고 작은 돌부리와 웅덩이를 그럭저럭 피하고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믿음 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길이 좁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했다면 어땠을까요.
그 길을 뒤돌아보며 걷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그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멈춰 서서 지나온 궤적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 더 반듯하게 걷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 자주 비틀거렸는지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굽이진 길마다 제각기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웅덩이를 피하려다 생긴 곡선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동전 한 닢 건네기 위해 잠시 멈춰 섰던 흔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비뚤비뚤한 발자국들이 모여 그 사람만의 유일한 지도를 그려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꽤 애썼다고,
참 수고 많았다고.
어깨를 한 번 가볍게 두드려 주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떤 길을 걷느냐는 결국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넓고 평탄한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좁고 험한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끝에서 한 번쯤 돌아봤을 때 이 길이 편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걸어온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길의 모양보다,
그 길을 선택한 이유가 결국 나를 말해줄 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왜 그 길이었어야 했나요.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제 길은 어땠을까 하고요.
그래서 지나온 길을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고 싶은 방향으로 돌을 던져라. 그리고 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조금은 돌아갈지언정 결국 그 돌을 줍게 된다. 혹시 그 돌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방향이 옳다면 분명 그와 같은 돌을 만나게 된다.”
반평생 제 좌우명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가끔 반문을 해 보기도 합니다. 그곳에 정확히 다다르지 못할까 봐 ‘방향’으로 난이도를 낮추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는 빛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 보였던 걸까요. 걸을 만한 길을 처음 택했던 그때부터 저는 매번 그와 비슷한 선택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꿈보다는 길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선택과 결과들에 만족하고 있고,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그렇게 무던한 선택들이 쌓이는 동안 저는
몸을 던져서라도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식을 조금씩 조금씩 잊어왔던 것 같다는 점입니다.
동경의 눈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냐”라고 묻는 후배에게 저는 이 자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두 번 생각 않고 말해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그 어릴적 잃어버렸던 그걸 찾아내지 못하여 스스로에게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앞으로 걸어왔지만,
결정을 내릴 때마다 사실은 지나온 길을 오래 바라보며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혹시 그 길 어딘가에,
제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떨어져 있지는 않을까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