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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형 May 09. 2020

물건 그 이상을 파는 커머스

29cm가 진짜 파는 것

우리가 29cm에서 얻는 것



 취미는 돈이다. 골프까지 안 가더라도 모든 취미에는 돈이 든다. 나는 밥해먹는 걸 좋아한다. 칼, 도마, 프라이팬, 혼자 살아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식재료를 고려한다면 요리는 집에서 치는 골프다. 그 돈이면 뿌링클에 치즈볼을 10년은 고민 없이 추가해 먹을 수 있었을 거다. 꼭 이렇게 통장에서 돈이 안 빠져나가는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어도, 역시 취미는 돈이다. 기회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맛있겠다며 승우아빠 유튜브를 돌려보고, 마켓컬리 식재료 설명 읽을 시간에 영단어를 외웠으면 천 개는 외웠을 테고, 최저시급으로도 아이패드는 샀다.  

   

 선호도 돈이다. 나는 권정열을 좋아한다. '스토커'만 들어서는 노래를 좋아할지 몰라도, 권정열이 좋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폰서트'도 '봄이좋냐'도 '별자리'도 좋아하고, 다른 많은 가수 노래를 듣고 나서도, 그래도 권정열이 좋아야 한다. 그러고 나름의 해석도 달아야 한다. 아 [찌질하지만 당당한] 가수는 권정열 하나구나. 나는 그냥 찌질해서, [찌질해도 멋있는] 권정열이 참 좋다. 이런 식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권정열을 좋아하는 나]가 완성된다.     


 핵심은 여유다. 돈을 쓰든 시간을 쓰든 해야 할 일과 무관해야 한다. 그래야 내 앞에 별거 아니라도 수식어를 남길 수 있다. 하다못해 [떡볶이를 좋아하는] 김진형이라도 하려면 순대와 튀김보다 떡볶이가 더 괜찮다고 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친해진다. 보통 친함은 그 사람의 선호를, 취향을, 그리고 취미를 공유함을 뜻한다.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묻는다. 엽떡 좋아해?     


 여기서 엽떡은 누구에게는 부담이다. 엽떡이 좋냐는 물음엔 [신전떡볶이가 좋은지 엽기떡볶이가 좋은지 고민할 여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고민할 여유가 없는 사람도 많다.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떡볶이를 먹어본 시간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치판단이 가능하다. 취향도 비용이다. 경제학은 우리를 돈을 벌지 못하면 쓸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자랑할만한 무언가를 쓴 비용으로 환원시켰다. 사람의 취향은 이런 측면에서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계량되기도 한다. 수많은 경험은 사람이 쓴 비용을 의미하고, 매력이라는 이름으로 장착되기 마련이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떠들다 보면,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정체는 이런 죄책감이다.     



 우리는 칭찬으로 [있어보인다]고 한다. 여기서 [있어보인다]는 고민할 시간이, 즐길 여유가, 들인 돈이, 그리고 몰입한 노력이 있어보인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으면 있어보이기 힘들다. 졸부들이 그렇다. 그들은 명품을 두르고 있어도 추하다. 왜냐하면,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철학, 나와 어울리는지에 대한 고민이 빠진 채 가격으로만 브랜드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비싼 명품을 통해 멋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명품을 구매할 재력은 물론이고, 나와 어울리는지 고민한 후 고른다는 여유가, 브랜드와 디자이너에 대한 배경지식이라는 교양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우리는 이제 모두 평등하다. 적어도 출생과 운에 따른 명시적인 특권은 사라졌다. 너와 나를 질적으로 구분할 무언가는 더 이상 없다. 그러자 우리는 약간의 차이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평민과 귀족은 이제 없어졌지만, [있어보임]은 원초적 욕구로 우리에게 남았다. 태생적인 수식어는 폐지되었음에도, 누구나 그럴듯한 말로 나를 수식하고 싶어 한다. 이런 구별 짓기는 이제 소비로 이루어진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그런 의미에서 나를 구성하는 일의 일부가 되었다.     


 소비가 나를 구성하는 성스러운 활동이라면, 29cm는 특별하다. 그들은 물건만 팔지 않는다. 29cm는 물건에 힙함을 더해 같이 판다. 우리에게 단지 물건이 아니라 [있어보임]을 선물한다. 29cm에서 물건을 사면, 썩 괜찮은 취향과 교양을 같이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특별하다. 이런 의미에서 29cm는 본능에 맞닿은 커머스다. 29cm는 우리에게 [있어보임]을 파는 스타트업이다.    

 

커머스로서의 29cm


  상품을 파는 기업들을 묶어 유통업이라고 부른다. 보통 커머스의 경쟁력이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잘 전달하는가를 말한다. 분명 소비자에게 상품을 건네는 일이 유통업의 본질이지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가치는 약간 다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커머스는 “상품을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감”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전통적으로 4P로 요약된다. 여기서 4P는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인데, 소비자에게 어떤 상품을 어디서, 얼마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지 가장 잘 표현하는 프레임이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하면서, 어떤 물건을 어디서 얼마에 뭘 보고 샀는지로 만족한다. 29cm는 여기서 Promotion과 Product의 경계를 허물었다. 보통은 상품이 있고 홍보가 있다. 상품으로부터 얻는 만족감은 소비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통해 자아를 빚어내는 영역은 개인의 몫이다. 따라서 많은 커머스는 대개 “좋은 상품을 싸게 팔아요”에 그친다. 그런데 잘 만든 광고는 제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소비자의 몫이었던 물건을 통해 얻는 만족을 증가시킨다. 29cm의 광고가 그렇다. 29cm는 광고로 상품에 힙함을 더한다. 우리는 그동안 힙한 상품을 발견하고, 파는 곳을 겨우 찾아내 물건을 샀다. 그런데 29cm의 프로모션은, 광고를 넘어 파는 물건을 힙하게 만들어낸다. 우리가 제품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 소비를 통한 자아의 구성이 유통의 본질이라면, 이 만족감에 손을 댄 유통업자는 29cm가 유일하다.     



 29cm는 커머스다. 그런데 신기하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광고도 아닌데 웬 사진과 글귀가 써있다. 스크롤을 내려야 그제야 익숙한 쇼핑몰 형태가 보인다. 앱은 더 골때린다. 손가락을 힘껏 밀어 올리면, 기껏 상품 두 개 정도 볼 수 있다. 아니 상품을 조금 보여주는데 뭘 사라는 걸까. 돈은 벌 수 있을까? 광고는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유발한다. 내가 작년에 가장 많이 누른 버튼은 유튜브 "광고 건너뛰기"일 거다. 광고는 내 지갑을 공격하는 침략군이다. 안간힘을 써서 내 지갑을 괴롭힌다. 꽉 찬 쇼핑몰 화면은, 전형적인 광고다. 29cm는 광고 대신 소개를 한다. 팔기 위한 광고가 아니라 정성을 다한 소개를 한다. 광고에서 안간힘을 빼니까 제안이 됐다. 29cm는 광고에 절실함을 빼고 매력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앱 29cm를 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문구는 guide to better choice,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제안]이다.    

 

 29cm는 물건에 [있어보임]을 더해, 같이 판다. 29cm에서는 나를 빚어내기 위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보통 우리는 취향에 맞춰 물건을 산다. 그 취향의 결정은 비용이고, 또 노력이다. 29cm에서는 취향과 물건을 같이 판다. [바쁜 도심 속 변화를 추구하는] 김진형이 하고 싶으면 그 설명이 적힌 옷을 사면 된다. 앞서 말한 복잡한 비교와 취향의 선택을 대신해준다.  29cm의 가격은 최저가보다 살짝 비싸다. 하지만 29cm에는 물건 소개에 들어간 취향과 노력이, 29cm가 대신 해준 [있어보임]이 들어가 있다. 소비는 나를 타인과 구분하기 위해, 특별한 나를 빚어내기 위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29cm에 지불하는 돈은 살짝 비싸더라도 합리적이다.   

  

 29cm에는 영화, 넷플릭스 콘텐츠 추천과 리뷰도 있다. 쇼핑몰에 달린 광고는 광고지만, 잡지에 실린 소개는 콘텐츠기 때문이다. 29cm는 미디어 커머스가 아니라 커머스 미디어다. 이런 방식으로 29cm는 재작년에 무려 1200억을 팔았다. 결국 29cm라는 잡지는, 상품에 [있어보임]을 담는 걸 성공했다. 29cm에서 구매하는 소비자를 힙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바꿔냈다.     


 사이트를 구경하다가 정말 잘 찍은 사진에 [피카소도 입었던 마린룩]이라는 소개를 보고, 마린룩에 담긴 역사에 대한 설명을 보고 혹해서 SaintJames 티셔츠를 샀다. 배송이 왔는데 직구가 더 싸다. 억울해서 적는 거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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