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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형 May 07. 2020

성심당이 특별한 이유

성심당은 한식당이다


 디저트는 한국말로 후식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한국에서 디저트는 간식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물론 유럽에서 디저트는 식사 후 먹는 단 음식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식사 후 입가심을 위한 설탕 덩어리는 한국에 없다. 식혜와 수정과를 마실지언정, 엿가락을 곱게 담아 입가심하는 전통은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디저트라고 부르는 케이크, 아이스크림, 빵 등을 따로, 또 배부르게 섭취한다. 한국에서 디저트는 카페에서 먹는 간식, 혹은 식사대용품에 가깝다. 그러니까 한국의 빵과 케익은 덜 달고, 많이 먹기 용이해졌다. 디저트는 후식보다는 간식으로 번역해야 옳다.


 우리는 디저트를 식사 마지막 코스가 아니라 또 다른 식사로 소비한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베이커리는 수많은 종류의 단 디저트들에서 설탕을 덜어냈다. 티라미수가, 컵케익이, 마카롱이, 파낭시에가, 마들랭이 그렇게 한국식으로 변했다. 물리지 않고 많이 먹기 위함이다. 한국의 마들랭과 파낭시에를 생각하고 외국 베이커리에 방문하면, 남다른 당도에 놀라고 만다. 우리와 디저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카롱이 한과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생겼다. 수많은 있어 보이는 이름의 디저트들은 한국식으로 변화했고, 한국의 제과제빵 시장은 독특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의 디저트 문화는 한국인이 디저트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특별하다.

    

 한국에서 디저트가 간식이라면, 성심당은 완벽한 베이커리다. 기존 유학파들의 베이커리는, 식사 후 설탕 덩어리에서 설탕을 줄이는 방식으로 장사한다. 바다 건너에서 잘 팔리는 상품들을 그대로 수입한다. 그렇지만 성심당은 디저트를 음식이랑 섞어버렸다. 튀김 소보로가 그렇고, 명란 바게트가 그렇다. 우리가 밥 대신 디저트를 먹는다면, 디저트에 설탕 빼는 수준이 아니라 밥이랑 섞는 게 완벽한 솔루션일 수 있다. 그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생각은 성심당의 레시피에서 현실화됐다. 명란젓과 바게트의 조합은 기괴스럽지만, 결국 한국인의 둘 다 밥으로 먹는 특징을 고려한다면, 둘의 스무스한 조합은 본질을 꿰뚫는 조합이다. 한식스러운 빵이 잘 팔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많은 비즈니스는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예컨대 빵집이 그렇다. 수많은 베이커리는 한국인의 식문화를 바꿔냈다. 결국 한국인의 입맛은 서구화되었고, 이제 떡집보다는 베이커리가 익숙하다. 줄어든 쌀 소비가 그 증거다. 이처럼 그간 많은 변화는 바다 건너 외국인의 삶을 닮아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비즈니스는 세계에서 잘 먹히는 테마를 그대로 들여와 한국인에게 팔았다. SPC그룹과 파리바게트와 쉑쉑버거가, 신세계그룹과 스타벅스가, 피자헛과 맥도날드가 그렇게 우리 삶과 섞였다. 많은 세계인이 좋아했다는 점에서 한국인도 좋아할 확률이 높았고, 쉽게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그런데 어떤 비즈니스는 한국다움을 반영하기도 한다. 성심당이 그렇다. 성심당은 한국스럽다. 그들도 베이커리지만, 한국의 식문화에 충실하다. 성심당은 바다 건너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이 좋아할 빵을 구워 팔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디저트를 밥과 후식과 간식 사이 어딘가로 바라본다. 성심당은 밥과 후식과 간식 사이라는 애매함 속에서 균형을 기가 막히게 잡았다. 결국 성심당은 한국스러운 빵을 팔아 수많은 베이커리 체인을 뚫고 대전에서 깃발을 꽂아냈다. 그들은 우리내 삶을 세련되게 녹여서 빵에 담아 판다. 베스트셀러 명란 바게트에는 한국인이 빵을 생각하는 문화가 담겼다. 우리가 베이커리를 소비하는 방식이 독특하다면, 성심당은 그 거울이다. 성심당의 빵은 서구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한식이라고 불러야 옳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식당이다. 성심당이 노잼 도시 대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불리는 농담은, 대전이 성심당의 도시라는 우스갯소리는 결국 이런 한국다움에서 생긴 게 아닐까.



 성심당은 10시에 오픈한다. 10시 10분에 방문했음에도, 줄 서서 빵을 한 바구니씩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 운동 나온 가족이 많았는데, 아마도 한아름 사서 휴일 점심으로 먹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도 둘이서 빵을 잔뜩 사 점심 대신 먹었다. 잔뜩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커피와 어울리는 괜찮은 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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