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부터 아이패드에 AI 파닉스 프로그램이 들어갑니다. 선생님들 방문 수업에서 파닉스가 빠지면 15분에서 10분으로 조정이 될 거고, 이에 따라 연봉도 조정될 예정입니다.”
팔몬영어 관악지사 본부장의 말이었다. 찬일은 걱정이 앞섰다. 집세, 작업실세, 생활비에 약간의 저축까지, 겨우 유지하던 생활에서 저축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돈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싶었다. 유명해지지는 못해도 말이다. 마음 편하게 작품활동을 하려면 유명해져야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 작업한 ‘숲의 정령’이라는 미디어 전시도 본인의 작업실에서 작게 전시해 오기는 했지만,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서로의 전시에 품앗이 형식으로 오고 가는, 아는 동료 작가들, 그리고 오고 가며 유리창 너머로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동네 유치원 꼬마들과 부동산 할아버지 등 몇몇 동네 주민이 다였다.
몇 년 전부터 AI 로보틱스 기술을 이용한 몰입형 전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DDP에 유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길래 보러 간 찬일은 그 기괴함에 놀랐다. 그리고 그것을 보러 온 많은 인파에 놀랐고, 그 전시를 인상 깊다고 극찬하는 사람들에 또 놀랐다.
그즈음 과학, 예술, 기술의 융합을 모토로 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찬일은 꾸준히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지원하면 곧잘 당선되곤 했는데, 로보틱스 기술을 안 써서 그런가, AI를 잘 활용하지 않아서 그런가, 지원하면 떨어지는 게 부지기수였다. ‘하긴, AI 로보틱스를 잘 모르면서 무조건 지원하는 나도 웃기지, 더는 안 되겠다’ 하고 시작한 게 ‘팔몬영어 방문 선생님’이다. 그런 그에게 AI는 또 일자리를 빼앗기 시작했다. 찬일은 AI라면 지긋지긋했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그는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뉴스에 꼴 보기 싫은 사람들만 나온다며 온갖 분노를 쏟아 내다가도 ‘그 맛에 뉴스를 보는 거지’ 하며 뉴스가 나오는 채널을 고정했다.
“최근 정원용 로봇이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파종부터 시비(施肥), 재배와 수확까지 수행할 수 있는 이 로봇은 도시에 상용화 이후 기능 보완을 거쳐 농촌 지역에도 단계적으로 보급될 예정입니다.”
‘정원로봇이라...벌써 움직이는 작가들이 있겠군, 뉴스에 나올 정도면 한발 늦었지. 뭐, 어휴...’
그렇게 찬일의 시간은 또 흘러갔다. 팔몬영어 선생님으로 시작해 작업실로 가서 작업하기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TV 뉴스 시청하기.
“최근 바람이나 곤충에 의해 씨앗이 날아들거나 품종 간 교잡(交雜)이 일어나면서, 각 산지와 식물원, 농가에 유전자 조작 품종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변종(變種)식물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부 농가에서는 머리 크기만 한 고구마와 팔뚝만 한 옥수수가 자라나는 등 돌연변이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정원용 로봇이 투입됐지만, 이들 변종식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일부 로봇은 뿌리를 남긴 채 잎만 제거해 오히려 번식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돌연변이종을 제거할 수 있는 ‘몬산다’ 농약이 개발됐지만, 인체와 환경에 대한 유해성이 심각하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제 ‘친환경’이나 ‘유기농 재배’라는 표현조차 쓰기 어려운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뉴스 화면을 응시하던 찬일은 이내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곤 즉시 뉴스 속 그 농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찬일은 일손을 도우러 왔다며 제초 작업을 하는 동네 어르신께 잡초를 제거하는 법을 배웠다.
“손끝이 야무져야 혀불제잉~ 로봇은 이거 못혀. 자, 따라 혀보랑께~ 요로코롬 야무지게, 후딱 혀. 안 뽑히믄 말이여, 요래 살짝 돌려가꼬 야무지게 뽑아뿌랑께잉~ 요로코롬 혀야제~”
찬일은 열심히 배웠다. 알음알음으로 용역회사를 차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수 채용하여 인건비를 최대한 줄였다. 그리고 야무지게 잡초 뽑는 법을 가르쳤다. 이 인력들은 어느새 고급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주 빌 게이츠가 말하는 ‘미래에 사라지지 않는 직업’에 ‘제초 작업 전문가’가 그 이름을 올렸다.
발 빠른 찬일은 '야무지게 잡초 뽑는 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각 농과대학에도 제초 작업 과정이 신설되기 시작했다. 인문학계에서도 과학계에서도 예술계에서도 찬일을 찾기 시작했다. 찬일은 바쁜 와중에도 본인의 작품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얼마 후 제초와 인문학 그리고 예술의 세계를 결합한 미디어 작업물을 내놨다. 찬일의 작품은 꿈에 그리던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쿵 짝 쿵 짝 야무지게 뽑아라 쿵 짝 쿵 짝 요로코롬 뽑아라’ 로 시작하며 국립현대미술관 지하 1층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다.
[작품명] : 야무지게 뽑아라
[전시 해설] : 제초와 인문학, 그리고 예술을 결합한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노동의 의미, 그리고 삶의 철학적 성찰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형태이다. 이 작품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역할과 그에 따른 철학적, 미학적 의미를 탐구하며, 제초 행위를 통해 삶의 복잡성과 단순함을 동시에 조명한다.
[전시구성]
1) 프롤로그 : 손의 기억
잡초를 뽑는 손끝의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섬세한 기술과 감각을 시각·청각적으로 풀어낸 프롤로그 공간이다. 대형 스크린에는 다양한 손의 제초 동작이 리듬감 있게 맵핑되어 펼쳐지며, 관람객은 그 움직임 속에서 손의 기억을 따라가게 된다. 입체음향과 진동을 통해 흙의 질감, 뿌리 뽑히는 미세한 촉감, 손의 감각까지 재현한다. ‘쓱, 뽁, 툭’—작고 익숙한 소리들이 공간에 울리며, 손이 전하는 노동의 언어를 새롭게 느끼게 한다.
2) 잡초의 저항
뿌리 깊은 잡초는 결코 쉽게 뽑히지 않는다. 이 공간은 관람객의 손 제스처를 인식하는 인터랙티브를 통해 ‘제초’라는 행위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스크린 앞에서 손을 움직이면, 시스템이 그 동작을 인식해 가상의 잡초를 제거하는 장면이 구현된다. 잘못된 손길은 뿌리를 끊고, '덜 야무졌다'는 문구가 화면을 채우고, 정확한 제스처로 뿌리까지 뽑아낼 경우 '야무졌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기계가 흉내 내지 못하는 손의 감각, 노동의 정교함, 그리고 ‘야무짐’이라는 말 속에 담긴 고유한 인간의 기술을 다시 생각해보는 체험이다.
3) 야무짐의 비대체성
인간의 손이 가진 섬세함과 기억, 그리고 감각의 결은 기계로는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 이 공간에서는 로봇 팔과 사람 손의 움직임을 나란히 배치한 4채널 영상을 통해, 그 차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로봇은 뿌리를 놓치고, 인간의 손은 흙 속의 저항을 ‘느끼며’ 반응한다. 화면 위에는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과 자막이 겹쳐 흐른다: '손은 기억한다. 지난 장마철의 점토, 봄볕 아래 마른 풀기…' '기계는 모른다. 언제 ‘쏙’ 빠질지를.'
이곳에서 관람자는 '기계로 환원되지 않는 감각'을 마주하게 된다.
4) 에필로그 : 야무짐의 철학
짧은 문장들이 어둠 속 LED 월에 천천히 흐른다. 그 문장들은 손의 기억, 감각의 깊이, 그리고 인간 고유의 기술에 대해 묻고 또 되짚는다. '잡초도 하나의 생명이지만, 그것을 뽑는 일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야무지게 뽑는다는 건 단지 제거가 아니라, 감각의 완성이다.'
이 공간은 묵묵히 일하는 손을 통해 감각으로 사고하는 인간의 철학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