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영을 추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리 행성에 대한 그녀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고, 그녀가 살던 행성으로 그녀를 돌려보냈다.
해영이 살던 행성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가 의무 교육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직업을 찾아 이웃 행성으로 떠난다.
대학교는 선택 사항이다. 대학교는 2년제, 3년제, 4년제로 나뉘며, 대부분 고등학교 성적과 생활기록부 평가에 따라 진학이 결정된다.
성적이 가장 낮은 경우에는 강제로 4년제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은 대학 생활을 마치면, 원하는 직업을 찾아 이웃 행성으로 떠난다.
그러나 직업이나 꿈이 없는 경우, 또는 대학에서의 생활이 순조롭지 않은 경우,
예컨대 여전히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지도교수를 무턱대고 따르거나, 호기심에 대학원 감옥 주변을 서성이다가 사소한 범죄라도 저지르게 되면, 졸업 후에는 곧바로 ‘대학원 감옥’에 수용된다.
대학원 감옥은 죄의 경중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경범죄의 경우, 석사 과정 최소 2년이 기본이며, 이 기간에 다시 범죄를 저지를 때 박사 과정이 최소 2년 추가된다.
중범죄일 경우에는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최소 3년의 징역에 처하며, 중도 석사 졸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형량은 무기한 연장될 수 있다.
모범수가 되면 수료 후 출소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논문 심사 통과 후 졸업까지 해야만 감옥을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석박사 통합 과정은 ‘무기징역’에 가까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석사과정에 수용된 강해영은 애초에 꿈이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또래 아이들이 하나같이 의사, 변호사, 교사 같은 직업을 꿈이라 말할 때도 해영은 늘 “저는 꿈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4년의 대학 과정을 마쳤고, 그 끝은 ‘대학원 감옥’ 수감이었다.
석사과정은 매우 고되었다. 해영은 매일 육체적·정신적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없던 꿈도 생길 법했지만, 해영은 여전히 꿈이 없었다. 다만 교도관이 시키는 일은 성실히 해냈기에 석사과정은 2년 안에 마칠 수 있었다.
박사과정 강제 입소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안에 꿈이 없거나, 직장을 구해 이웃 행성으로 이주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박사과정에 수용될 상황이었다.
해영은 감방 동기의 소개를 통해 가까스로 직업을 구했다. 출근하자마자 그녀는 오토캐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나서는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도면만 쳤다.
결국 그녀는 그 행성에서 탈출해 다른 이웃 행성으로 이주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식물 생태를 연구하는 연구원에 들어갔다. 해영이 들어간 연구실은 프로젝트 하나가 최소 10년~최대 50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고, 거의 변화가 없는 데이터 수치를 매일 살피며 변화 없고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꼈다.
이 행성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더는 다른 직업을 찾을 자신도 없었다. 여전히 꿈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박사과정에 입소하게 되었다.
박사과정은 해영 말고도 석사과정 중 범죄를 저질러 형량이 늘어난 사람들, 중범죄를 저지른 석박사 통합 과정 중 형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석사과정보다도 훨씬 더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다.
담당 교도관은 매일 “야아아아! 해영아아아아아! 강해여어어어엉! 도대체 왜에에에에?”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해영은 다시 이웃 행성의 연구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무엇보다 그녀를 지치게 만드는 건 박사과정 내의 불공정함이었다.
특히 퇴직한 기업 총수나 전 국회의원처럼 ‘파트타임 과정생’이라 불리는 이들과의 차별은 참기 힘들었다.
그들의 '형기 만료' 조건인 졸업 논문은, 사실상 해영과 같은 '풀타임 수감자'들의 노동을 착취해 완성되었다.
파트타임 수감자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논문이 통과되고, 유유히 출소했다.
해영을 비롯한 풀타임 수감자들 모두가 분노했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형량은 길어질 뿐이었다.
해영은 탈출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도는 매번 실패로 끝났다.
한 번은 “해영아아아아아아!”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교도관에게 “왜 소리를 지르세요오오????”하고 대들었다가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박사과정 3년 차, 해영은 마음을 고쳐먹고 모범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모범수에게는 박사 수료만으로 출소할 수 있는 심사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해영은 심사 대상자가 되었고, 무사히 심사를 통과했다.
동료 수감자들의 박수와 부러움을 받으며, 그녀는 마침내 ‘대학원 감옥’을 떠날 수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 해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출소 후, 본인에게 맞는 직업을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은,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영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계속 꿈 또는 직업이 있어야 했다.
해영은 이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꿈이 없어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을 찾아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렇다. 드디어 해영에게 ‘꿈’이 생긴 것이다.
'꿈 없이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내는 것'
물론, 그녀가 살던 행성에서는 그런 꿈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자의 행성’은 실제로 존재했다.
해영은 수많은 시도 끝에 우리 행성에 도착했다.
푸른 숲이 우거진 그림 같은 풍경은 날마다 긴장 속에 살던 해영에게 안온한 일상을 제공했다.
꿈이나 직업에 대해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해영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꼈다.
그런데 청개구리 같은 해영은 우리 행성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이 생겨버렸다.
그림을 꾸준히 그려서 전시회를 연다.
프랑스어를 마스터해서, 다시 파리의 그 빵집에 찾아간다.
요리를 배워 한식당을 차리고 흑백요리사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본다.
체력을 키워서 이곳저곳 여러 행성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본다.
………너무 많아 중략…………
꿈 같은 소리를 계속 늘어놓는 해영을 우린 추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꿈이 늘어가던 그녀는 우리의 결정에 동의했다.
해영은 도착해서 당장 실행에 옮길 일들을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