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만큼은 남겨주세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영상의 마술사라 불리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연출과, 천재 작가라 불리는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놀라운 연출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더욱 뛰어난 영화로 볼 수 있던 것 같다.
영화는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또 그 사랑에 지쳐 감으로써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다는 이 독특하고도 비현실적인 설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내러티브의 순서가 시간 순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어지럽게 느껴지지만 여기에서 관객은 이 잔인한 사랑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사랑의 희생자같은 조엘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되기 시작한다.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그들에게도 헤어짐의 순간이 찾아오고, 여자는 사랑했던 그와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린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클레멘타인을 보며 조엘도 기억을 지워주는 라쿠나 회사에 찾아가게 된다. 그녀와의 기억을 지워가는 과정에서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동도 없이 자고 있지만 머릿속에선 좋았던 때와 힘들었던 때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되새김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아프다. 그런 그가 내뱉는 가슴 아픈 말 “이 기억만큼은 남겨주세요”는 정말이지 가슴을 후벼팔 수밖에 없는 대사이다. 또 그는 계속해서 기억 지우기에 반항한다. “취소할래요. 다 취소한다구요. 기억 지우기 싫다고요.”라고 말하는 그가 회로를 벗어나 버리는 장면은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지워지는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도망 다니는 그의 모습. 무엇을 위해 그는 기억을 지우려 한 것일까.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과의 추억들을 지운 것이 괴로워서 였을까. 이미 지워진 기억 속에 존재하는 조엘을 보여주며 영화는 기억은 지우려고해서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조엘과 클레멘타인 외에 메리(커스틴 던스트)의 경우에도 유부남을 사랑하여 기억을 지운 적이 있는 여자임을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기억을 지우길 바라고 또 노력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행복했던 시간들까지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잔인하고 매정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기억들을 지울수만 있다면 더 이상 추억하지 못하더라도 이 기술을 시행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랑의 아픔은 잔인한 것이기 때문에.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있고 기억하려 해도 끝내 지워지고 마는 사랑이 있다.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듯 기억은 지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또 기억이 지워졌다 해도 남게 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사랑의 운명론 같은 이 모습은 사랑의 신기하고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사랑의 과정에서의 아픔들까지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에. 사랑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이전에 사랑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주는 영화다. 그 사랑 속에서의 각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사랑은 추억을 가지고 있을 때 영원한 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