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그 때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있도록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초원 사진관의 사진사 정원(한석규)와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노총각 정원은 몸이 아파 병원을 다니며 매일 약을 먹으며 살아가는 남자다. 그런 그의 삶에 다림이 들어오게 되는데, 불법주차 사진들을 현상해야 하는 그녀는 초원 사진관의 단골손님이 되어 버린다.
어렸을 때부터 텅 빈 운동장을 좋아한 정원은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또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 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한다. 이 대목은 정원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즉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영화는 죽음과 관련된 일상에 대하여 계속해서 얘기한다.
초원 사진관에 다림이 자주 드나들면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말리는 정원을 보며 다림은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는다. 조금씩 둘 사이에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딘가 모르게 당돌해 보이는 다림은 정원에게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생일이 8월 아니냐며 사자자리가 나와 잘 맞는다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사랑스럽게 보인다. 정원 역시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듯 더워하는 다림에게 선풍기를 고정시켜주는 모습은 그에게 관심을 내비치는 그녀에게 답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원이 다림에게 반말을 하게 되면서 둘이 더욱 친해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홀로 버스를 타고 가는 정원. 버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 지진 않을 거예요” 이 노랫말처럼 정원은 사랑이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 그의 마음에 다림이 자리 잡고 있으나, 그에겐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늘 담담하고 밝아 보이던 정원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고 서글퍼 보인다. 하지만 다림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정원에게 다가온다. 하지 않던 화장을 하고 사진관에 오기도 하고, 정원의 예쁘다는 말 한마디에 부끄러워하고. 다림은 사랑에 빠진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다. 비 오는 날 한 우산 속에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을 하는듯해 보인다. 함께 운동장을 뛰기도 하고, 놀이동산에 가기도 하고. 여느 연인들과 같은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정원에겐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죽음은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더욱 죄어온다. 영화는 텅 빈 운동장을 자꾸 보여주며 정원이 어렸을 적 생각했던 사라져 버린 다는 것, 사라져 버릴 시간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그런 정원이 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갑자기 쓰러져 입원한 정원.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닫힌 사진관 앞에서 매일 정원을 기다리는 다림. 혼자만의 기다림을 힘들어하는 다림은 돌을 던져 사진관 유리를 깸으로써 정원을 원망하는 마음을 나타내준다. 또 이 장면은, 많은 것들을 추억으로 남기는 초원 사진관의 정적을 깨려는 그녀의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추억으로 그치고 싶지 않은 그녀이기에.
그런 그녀에게 다가갈 수도, 말을 건넬 수도 없는 정원은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스스로 영정사진을 찍는 정원의 모습이 무척이나 담담해 보여서 더욱 가슴이 저며 온다. 그렇게 떠난 정원의 사진관에 시간이 지나 찾아온 다림은 안에 걸려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며 정원과의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떠난다. 닫혀 있던 사진관에 밀어 넣은 편지의 답장은 그렇게 걸려 있는 사진으로 다림에게 전해진다. 끝까지 정원의 죽음을 알지 못한 그녀에게는 정원과의 사랑이 그저 행복한 추억인 것이다. 사랑이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고 말하던 정원은 그녀를 추억으로 두지 못하고 그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난다.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엔딩 장면은 이 이야기가 그저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평범한 일상을 현실적이고 담백하게, 담담하게 그려내며 멜로 영화 속 흔한 키스 장면 하나 없이, 또 사랑한다는 말 하나 없이 절제된 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최고의 멜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