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진정한 사랑의 결핍이 야기하는

by STAYTRUE

영화 <간신>은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김강우)과 그의 간신들(주지훈, 천호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간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당시 여색과 예술에 빠져 향락과 쾌락만을 좇던 왕 연산을 위해 1만 미녀를 강제 징집하여 궁으로 들인 '채홍'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당시 450만의 인구 중 15~25세의 1만 명에 달하는 여자들을 채홍한 것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전에도 연산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나 있었지만, 이번 영화 <간신>에서는 기존에 잘 다뤄지지 않았던 '채홍'이라는 잔인하고 파격적인 소재를 담아냈기에 신선했던 것 같다. 또 전에 보지 못 했던 연산군의 예술적인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화려한 색채와 수려한 영상을 볼 수 있어 여러 면에서 볼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는 영화다.

영화는 장녹수 역을 맡기도 한 차지연의 판소리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며, 연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폐출 경위를 임사홍(천호진)으로부터 전해 듣게 됨으로써 폭군의 대명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도록 광기와 학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실 영화 초반부터 예고 없는 잔인함에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렇듯 영화는 연산군의 당시의 극악무도했던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오른쪽 눈 옆에 자리한 큰 점은 어딘가 모르게 공포스러워 보이기도 하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준다. 피를 많이 본 이유로 환영과 불면에 시달리던 연산군이 환영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고대하던 저승사자들을 보았다고 하는 대목을 보면 그도 자신의 광기를 느끼고 있었고, 그에 대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더욱더 미쳐가는 연산군의 모습은 운평들이 궁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여자를 좋아하는 연산군에게 1만 명의 여자를 바치니 연산군이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간신들은 연산군에게 더욱 미칠 수 있도록 불을 지펴준 것이나 다름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읜 연산군에게는 '진정한 사랑'이 부족했을 것이다. 장녹수와의 관계가 이성과의 관계이기보다는 모성과의 관계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도 어머니가 없는 연산군이 장녹수를 통해 모정을 느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아가라고 부르는 장녹수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젖을 물고 나서야 안정을 취하는 한없이 아이 같은 왕이다. 또, "내 마음이 너무도 허하고 외롭소."하는 대사에서는 연산군의 진심 어린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연산군에게 1만 미녀들은 기쁨이자 활력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신 임숭재(주지훈)는 기존의 간신들의 이미지와는 다른 차분하고도 힘 있는 간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왕의 지독한 충신처럼 보이지만 "왕을 다스릴 힘이 바로 내 손안에 있나이다. 제가 바로 왕위의 왕이란 말입니다."라며 아버지 임사홍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장면은 권력에 미쳐가는 임숭재를 가장 잘 나타내 준 장면이다. 그런 임숭재가 왕이 선택한 단 한 명의 흥청(임지연)을 탐할 때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느냐며 임숭재마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하는 연산의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이렇게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갈 수 없는 난세에서 왕도 임숭재도 다른 세력들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미쳐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간신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정치적인 혼란이 심했던 연산군 시대를 잘 표현해주었다.

예술에 능했던 연산군은 그림을 그리는 솜씨, 춤과 노래를 넘어 시를 짓는 재주도 뛰어났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들 모두 연산군의 작품이라 하니 전에 보지 못 했던 뛰어난 예술성을 엿볼 수 있어 신선했다.

색을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는 때로는 과하게 스크린을 살색으로 채운다. 왕을 위한 방중술과 사실적 묘사를 위한 노출들은 자칫 과하다 여겨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끝까지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있다. 이유 있는 노출이기도 하고 감각적인 영상으로 보여지기에 지나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살색과 핏빛을 오가며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이 영화는 가벼운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웰메이드 영화인 것 같다.

민규동 감독이 요약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흥청망청의 기원을 다룬 비극적인 이야기'라 말한다. 흥청으로 인하여 그 시대가 망하는 모습들, 또 광기의 왕과, 왕의 광기에 광기를 더하는 간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 모든 캐릭터들에 대해 연민과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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