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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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18번째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나 자신과 나의 것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그리는 한 사람 자신과 그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다. 영수(김주혁)와 여자친구 민정(이유영)은 금주의 약속을 한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의 지인 중행(김의성)이 민정이 다른 남자와 술집에 출현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야기하고 있는 그것이 중행이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처음에 믿지 않던 영수는 조금씩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결국엔 그 이야기를 믿게 된다. 그 후에 영수와 민정의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고 민정은(어쩌면 민정이 아닌 그녀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자신은 민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 여자는 카페에서 ‘변신’이라는 책을 읽곤 한다.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변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민정에게서 파생된 듯한 이 여인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재영(권해효)와 상원(유준상)에게 “저 아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그들은 민정이의 모습을 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알던 민정이라는 사람에게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각으로 그녀를 보기 시작한다. 이렇게 민정이 남자들을 만나는 것을 본 영수의 지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또 보이는 것만을 두고 단정 짓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만일지도 모르니까.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들은 사람에 대해 단정 지어 보고 말하고 판단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걸까.
계속해서 민정을 찾아헤매던 영수가 영화의 마지막 마침내 민정 아닌 민정을 만났을 때, 전과 달리 믿음과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서야 둘의 관계는 재정비된다. 이전처럼 민정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마침내 영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민정)을 모르지만,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받아들이며 사랑할 것을 다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젠 그녀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을 소유하려 할 때 그로 인해 생기는 갈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또 우리는 수많은 기준을 가지고 상대를 그 기준에 맞추려 안간힘을 쓰곤 하지 않나. 타자를 자신의 틀에 넣고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정의 영악한 거짓말에 넘어가는 남성 캐릭터들은,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녀를 모른다고 여기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준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영화 속에서 관객은 진짜 일어나는 일도 환상으로 의심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던 민정의 행동들도 다시금 백지화시켜 이해를 부추긴다. 영화는 이런 민정과 같은 사람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세상의 사람들 모두를 내 프레임안에 맞출 순 없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