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봉 당시 525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굉장히 잘 짜여진 플롯으로 구성된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 와요>를 각색한 작품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한국 사회 최초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미해결 사건에 코믹 요소를 접목 시켰기 때문에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영화다.
군사독재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민주화 시대였던 1986년 경기도. 젊은 여인이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이 사건을 맡기 위해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 이용구(김뢰하), 서울 시경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김상경)이 특별수사본부에 배치된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시골 농촌의 한적한 마을에서 발견되는 무참히 살해된 시신들이 그 평화로움을 깨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한다. 당시 5공화국 붕괴 작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경찰 조직과 공권력은 시위 진압과 반정부 세력 타도에 투입되어 있었다. 또한 아시안 게임, 88올림픽, 여러 가지 정치 이슈들로 국가에 정신이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과학수사의 틀이 잡혀 있지 않던 당시의 대한민국은 이 사건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기에,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는 것이 당시의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부분이다.
현장 보존이라곤 전혀 이뤄지지 않는 시신 발견의 현장에서 그들은 나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시신의 속옷을 가지고 장난치며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로, 두 손은 뒤로 결박당하고 머리엔 자신의 속옷을 뒤집어쓴 채 엎드려 있는 기괴한 시신이 있다. 현장의 증거들은 대부분 훼손이 되어 버리고 시체마저 보호받지 못하기 일쑤인 사건 현장은 정신이 없고 어지러울 뿐이다.
취조실로 사용되는 지하실은 외부의 시선을 피한 채 무고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장소이기도 하기에 사회와 격리된 채 누명을,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무고한 시민들의 모습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사회고발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수많은 복선들을 던져놓고 대사나 사건들로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또 두 캐릭터(두만과 태윤)가 대립하며 이야기를 전개시켜가는 것을 보면,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이전에 사건에 뛰어드는 육감적인 면을 강조하는 두만과 달리 태윤은 과학적인 면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위의식이 강한 두만과 용구, 엘리트적 의식에 젖어 있는 태윤, 무고한 시민인 백광호와 조병순, 직관적이고 행정적인 구 반장, 합리적이며 현대적인 신 반장까지. 캐릭터들의 성격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이런 캐릭터의 성격들이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변모되어가는 모습은 가치관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모습들은 전근대적인 직관적 의식 질서와 합리적인 근대적 의식 질서가 변화해가는 시기로 빗대어 볼 수 있고, 화성이라는 공간의 의미 또한 그런 점과 관통되는 부분이다.
강간범과 피해자의 오빠를 두고 누가 범인인지를 묻는 장면(이 장면에선 관객들에게도 질문을 던지지만 해답은 제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뒤로 이어지는 두만과 설영의 정사 장면과, 부패한 시신으로 꽉차던 화면이 빨간 핏물을 품은 고기로 꽉 차는 장면 등 연관성 없는 두 이미지를 연결함으로써 극대화되는 이미지의 대비를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데에 큰 재미를 부여한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박현규(박해일)가 범인인 듯 몰아간다. 모든 정황들을 그에게 맞추며 바라보게 되는 내 시선도 어쩌면 무구한 사람에게로 향하는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해자로 낙인 된 현규는 정말 범인이 맞는 걸까?
끝내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이 사건은,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뿐만이 아닌 시대의 총체적인 무능을 역설한다. 왜 우리는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 왜 우린 80년대에 무능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되짚어보면, 군부독재의 전두환 정권기, 민주 항쟁 시기에 행해진 폭력성으로 인해 억압된 사회상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개인이 국가에 의해 동원되는 모습, 심지어 더 나아가 범인과 정권이 공모되는 듯한 모습(등화 관제가 오히려 범인에게 득이 되어버리는 시대에 따른 기막힌 사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모습들(군화 발로 시민들에게 폭력을 선사하던 용구가 신반장에게 발로 차이기도 하던 모습, 그런 용구가 자신이 폭력을 가했던 광호의 역폭력으로 인해 다리에 못이 박힌 모습)이 교차되면서 잔인하게만 느껴졌던 오른 다리에 대해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 또한 교차되기도 했다. 영화 속 인물들과 사회가 각기 다른 형태의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광호가 죽을 때 두만의 손에 묻은 피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바지춤에 슬며시 닦아내는 모습에는 어떤 감정이 묻어 있었을까. 당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버린 상황들에 대해 환기시킨다.
엔딩 씬에서 강조되는 범인은 평범하다는 것과 더불어 끝내 잡지 못한 그 범인이 아직도 우리와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준다. (그간 금기시 되어왔던) 배우가 카메라의 정면을 바라봄으로써 영화는 막을 내린다. 화가 난 듯하면서도 감정이 북받치는 듯 억눌린 눈빛의 두만을 보며 관객은 묘한 감정에 이끌리게 된다. 관객의 바람과는 다른 결말로 끝이 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어쩌면 영화 속에 담긴 그 모든 것들에게,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많은 관객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