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이상우(유지태), 방송국 라디오 PD인 한은수(이영애)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게 되면서 여행을 하며 녹음을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혼을 경험한 여자 은수는 상우에게 그것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내숭 없고 당돌한 여자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은수와 상우에게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상우에게 은수는 말한다. “라면, 먹을래요?” 그리고 은수의 집으로 들어간 그에게 또 말한다. “자고 갈래요?” 이렇듯 은수는 사랑에 있어서 리더십과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맛보려는 그녀의 방식은 매우 인스턴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둘이지만, 은수는 그런 둘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숨기려 든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든 상우는 기분이 나빠도 확실히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라면 먹을까?”라고 권하는 모습이 은수의 사랑법을 기어코 따라가려는 듯 보인다. 이렇게 둘의 은어가 되었던 라면은 서서히 다른 기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김치와 라면을 먹으며 김치를 담굴 수 있다던 은수는 사귀는 사람 있으면 아버지가 데리고 오라 하셨다는 상우의 말을 듣자 금세 말을 바꾼다. “상우 씨 나 김치 못 담가.” 그런 그녀에게 상우는 반복해서 말한다. “내가 담가 줄게. 내가 담가 줄게.” 이렇듯 은수는 계속해서 라면 같은 인스턴트적 사랑을 지향하지만 상우는 그런 그녀에게 발효 식품인 김치 담그기를 권유한다. 그도 못한다면 자기가 담가 주겠다고까지.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희생적인 상우의 모습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답답한 상우의 성향이 드러나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시기에 은수 앞에는 새로운 남자까지 나타난다. 마음이 흔들리는 그녀,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상우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힘들구나, 울지 마. 라는 말 밖에는. 상우가 차린 밥상을 은수는 거부해 버린다. 결국 상우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은 이 둘의 사랑이 결국 어긋나 버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둘의 관계는 상우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은수에게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조심해”라는 대사는 경고하는 상우의 모습이다. 내 사랑은 인스턴트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내 사랑은 그리 쉽고 간편하지 않다고.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열창하는 상우의 모습. 기실 그 둘의 사랑은 끝이 난 상태인 것이다. 결국 은수는 상우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때에 상우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대목은 왜 사랑이 변한 거니라고 그대로 묻는 것이기보다는, 이미 변한 그녀의 사랑을 원망하는 것처럼 들린다. 대체 네 사랑은 왜 그러니라는 뉘앙스로. 그녀를 뒤로하고 차 안에서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사랑을 했던 상우의 상처로 다가온다. 사랑의 무게가 한쪽으로만 기울 때 그만큼 괴로운 것도 없으니까.
시간이 흘러 재회한 상우와 은수는 벚꽃잎이 만개한 거리를 걷는다. 상우는 전과 달리 은수의 걸음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 하는 그녀의 사랑 또한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사랑법은 그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큰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지고지순한 순애보적 사랑을 하던 상우와, 순간의 감정으로 사랑하며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를 두려워하던 은수이기에 맞지 않을 수밖에 없던 이유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전에 녹음했던 은수의 허밍음을 들으며 보리밭에 홀로 서 있는 상우의 표정의 변화만큼이나 마음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조금은 서투른 모습으로 사랑을 시작했고, 그 사랑은 끝났지만 그 시절만큼은 행복했음을 깨닫고 미소 짓는 성장한 남자의 모습. 이렇듯 더는 만날 순 없어도 잊지 못할 그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추억할 수 있을 때에야 사랑은 비로소 끝이 나는 것 같다.
상대와 완전히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상대의 감정을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변해버린 은수의 사랑을 두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은수와 상우의 이야기들. 그 사이사이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의 사건들. 두 사람을 품었었던 그 시간들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졌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변해 버리는 순간을 경험하고 어찌할 줄 몰라하던 상우의 모습이 사랑에 아파하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될 수 있기에. / 모두가 혼자인 상우의 가족들처럼, 또는 이 두 남녀처럼 이별의 상흔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남에서 님으로, 그리고 다시 남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저 주어진 시간 동안에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봄날이 가면 또 다른 봄날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