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성과 소멸을 얘기하다
강릉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이상우(유지태), 방송국 라디오 PD인 한은수이영애)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여 여행을 함께하며 녹음을 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첫 만남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던 은수는 내숭 없이 당돌해 보인다. 이런 은수는 이혼을 경험한 여자이지만 상우에게 그것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한편, 상우는 한없이 순수해보이는 청년이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이별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늘 기차역에서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다린리는 치매에 걸리신할머니의 모습은 사랑의 아픔이 무엇인지, 이별의 아픔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나타내고 있다.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던 할아버지였지만 한때 바람을 피웠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고모는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다고 말을 한다. 이런 모순적인 모습은 사랑의 이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의 사랑은 시작과 끝이 다르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은수와 상우에게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집 앞으로 바래다주는 상우에게 은수는 말한다. "라면 먹을래요?" 그리고 은수의 집으로 들어간 그에게 또 말한다. "자고 갈래요?" 이렇듯 은수는 사랑에 있어서 리더십과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맛보려는 그녀의 방식은 매우 인스턴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그녀가 지향하는 사랑법이다. 그렇게 둘의 사랑이 시작되고 행복한 날들이 계속된다.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둘이지만, 은수는 그런 둘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숨기려 든다. 그런 은수에게 "라면 먹을까?"라고 권하는 상우의 모습은 자신의 사랑법을 기어이 저버리고 은수의 사랑법을 기어코 따라가는 듯해 보인다.
김치와 함께 라면을 먹는 둘. 김치를 담굴 수 있다는 은수는 사귀는 사람 있으면 아버지가 데리고 오라 하셨다는 말을 듣자 금세 말을 바꾼다. "상우씨 나 김치 못 담가." 그런 그녀에게 상우는 반복해서 말한다. "내가 담가 줄게. 내가 담가 줄게." 이렇듯 은수는 계속해서 라면 같은 인스턴트적 사랑을 지향하지만 상우는 그런 그녀에게 발효 식품인 김치 담그기를 권유한다. 그도 못한다면 자기가 담가 주겠다고까지. 여기서부터 그녀에 대한 상우의 희생적인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후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은수 앞에는 새로운 남자까지 나타난다.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상우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힘들구나, 울지마. 라는 말 밖에는. 밥을 차려 먹이려는 상우와 밥을 먹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은수. 결국 사우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은 이 둘의 사랑이 결국 어긋나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더욱 갈등이 깊어지며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조심해"라는 대사는 은수에게 경고하는 상우의 모습이다. 내 사랑은 인스턴트 적인 사랑이 아니야 라고. 내 사랑은 그리 쉽고 간편하지않다고.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열창하는 상우의 모습. 기실 그 둘의 사랑은 끝이 난 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은수는 상우에게 이별을 고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대목은 왜 사랑이 변한 거니 라고 그대로 묻는 것이기보다는, 이미 변한 그녀의 사랑은 원망하는 장면이다. 대체 네 사랑은 왜 그러니라는 뉘앙스로. 그렇게 어느 봄날의 벚꽃처럼 금방 왔다가 금방 떠나간 그녀를 뒤로하고 돌아서 차 안에서 울음을 삼키는 상우의 모습은 상대방보다 더 사랑을 했던 상우의 상처를 보여준다. 사랑의 무게가 한쪽으로만 기운다면 그만큼 괴로운 것도 없으니까.
영화의 마지막, 이전에 녹음했던 은수의 허밍음을 들으며 보리밭에 서 있는 상우의 표정 변화만큼이나 마음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사랑은 변했지만, 사랑을 했던 그 시절만큼은 행복했었음을 깨닫고 미소 짓는. 더욱 성장한 그의 모습으로 가슴속에 지난 사랑을 간직하고 추억할 수 있을 때에야 사랑은 비로소 끝이 났다.
이런 이별의 상흔들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들이다. 남에서 님으로, 그리고 다시 남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에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걸까? 그저 주어진 시간동안에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봄날이 가면 또 다른 봄날이 올 테니까. 그럼에도 봄날은 절멸되지 않을테니까. 하여 우리는 김치든 라면이든 소화만 잘 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