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깨끗했던 박하사탕을 그리며
이창동 감독의 1999년 작인 <박하 사탕>은 개봉 당시 <올 한해 한국 영화를 빛낸 가장 뛰어난 작품>에 선정되며,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다소 특이한 시퀀스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총 7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첫 장면인 99년 봄(야유회). 20년 만에 다시 오게 된 장소에서 영호(설경구)는 분노에 차 있는 듯하며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그런 그가 선로에 올라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자살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렇게 카메라는 기찻길을 따라 움직이며 사흘 전(사진기)으로 되돌아간다. 갖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 산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던 영호는 주차장에서 한 남자를 죽이려다가 실패를 하게 된다. 이렇듯 영호라는 인물은 영화의 초반부터 사회부적응자인 듯 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에게 순임(문소리)이라는 사람을 알지 않느냐며 찾아온 한 남자. 40살의 직업도 없는 영호는 그를 앞에 두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들을 합리화시키기도 하는 그를 보며 당시 그 시대를 살던 여느 중년들의 모습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그를 따라 순임이라는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간 영호. 그곳에는 혼수상태에 있는 20년 전의 사랑하던 여자인 순임이가 있다. 그런 그에게 그들의 추억이 담긴 박하사탕을 건네며 우는 영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하고 마음 아픈 영호의 순수함이 가장 잘 나타난 장면이다. 다시 기찻길을 따라 멈춘 곳은 94년 여름(삶은 아름답다). 35살의 가구점 사장인 영호는 바람피우는 부인을 잡아 혼을 내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가구점 직원과 바람을 피우는 뻔뻔한 남자이다. 그런 그가 고깃집에서 과거 자신이 고문했던 한 남자를 만나면서 그에게 다시 묻는다. 진정 삶이 아름다운 것이냐고. 그렇게 다시 시간은 87년 봄(고백)으로. 현재 부인 홍자는 만삭이지만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듯한 영호. 그는 일에 있어서도 닳고 닳은 형사이다. 잠복근무차 가게 된 군산에서 그는 한 여인을 두고 순임이를 목놓아 부른다. 이 장면은 순수를 잃어버린 그가 순수를 갈망하는 듯한 걸로 보였다. 다섯 번째 챕터인 84년 가을(기도)에 그는 신참 형사이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한 남자의 고문을 맡게 되면서 결국 자신의 내면에 내재되었던 폭력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손이 착해 보여 좋다는 순임에게 홍자의 몸을 더듬으며 "맞아요. 제 손 참 착해요"하는 장면은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며 순임의 순수마저 짓밟는 영호를 볼 수 있다. 80년 5월(면회). 그가 군대에 있던 시절. 긴급 출동시 순임에 보내준 박하사탕은 바닥에 떨어지게 되고, 면회를 왔던 순임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날 밤 집으로 귀가하던 여고생에게서 순임을 보게 되는 그는 여고생을 살려주려다 실수 죽이게 되는 장면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에 맞춰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 주기도 하며, 박하사탕과 동시에 순임도 지키지 못 했던 것을 나타낸다. 영화의 마지막 챕터는 79년 가을(소풍). 누구보다 순수한 영호와 순임. 그들은 그곳에서 설렘을 느끼며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영화 첫 시퀀스와 같은 장소. 그 곳에서 영호는 순임이에게 박하사탕을 받고 좋아한다. 그들에게 박하사탕은 순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와본적이 없지만 철교와 강이 너무 낯익다는 영호는 무리에서 나와 기차소리를 들으며 웃을 듯 웃지 않으며, 울듯 울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듯 영화는 기차라는 것을 시간 여행의 매개로 사용하면서 첫 시퀀스에서 보인 영호라는 인물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타락해가게 되었는지를 시간 역순으로 구성하여 설명해준다. 영호가 살아온 인생의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며 왜 첫 장면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1980년 5월 광주에서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9년 IMF 직후부터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고 박 대통령이 암살된 1979년까지의 여정을 그리며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에게 그 시대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영호라는 평범하고 평범했던 인물이 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독재정권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그리고 다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던 영호. 이것을 영화는 역사에 비춰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호라는 인물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도 그 이유에 있다. 폭력이란 무엇인지. 어떠한 권력 속에서 우리는 폭행당했는가를 되짚어보게 된다. 영화는 이런 우리의 지난 역사를 관통하며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영원히 순수할 것만 같던 한 남자의 순수를 찾아 헤매는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시간을 상징하는 기차를 매개로 했다는 것이 참 기발했던 것 같다. 그 시대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닌, 지금 현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의미들이 잘 나타나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