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지독하게 시리고 차가운 교향곡

by STAYTRUE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중에서는 가장 저조한 흥행성적을 거둔 작품이지만, 나에게만큼은 조용히 다가와 있는 대로 후벼파고 가는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이다. 가장 서글픈 복수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농아인 류(신하균)은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임지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소음 가득한 그의 일터에선, 동료들이 헤드셋을 끼고 일을 하고 있다. 초록 머리의 류는 귀머거리이기에 헤드셋이 필요 없다. 그에게는 너무나 고요할 테니까. 남들 교대할 때도 홀로 남아 일하는 류의 모습은 세상에서 단절되어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누나의 신장 이식 수술을 위해 가진 돈 1000만 원을 털어 장기밀매업자들에게 신장을 구하러 가지만, 그는 자신의 신장과 전 재산 천만 원을 모두 잃고야 만다. 그들이 두고 간 바닥에 떨어진 빨간 장미꽃 한 송이만이 그에게 남겨졌을 뿐이다. 후에 나타난 장기 기증자로 인해 희망이 보이는 듯하지만 돈이 없는 류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좋은 유괴’를 하자는 그의 여자친구 영미. 그렇게 그들은 중소기업체 사장 동진(송강호)의 아들 유선(한보배)를 유괴하게 된다. 자신들의 유괴는 좋은 유괴라고 여기는만큼, 유선에게 그들은 아빠를 대신해 자신을 맡아주는 좋은 사람들로 각인된다. 동진의 지나친 회사일로 인해 엄마를 떠나보낸 유선에게 그들은 좋은 벗이 된 것이다.

허나 류의 만행을 알게 된 누나는 자살을 하게 된다. 숨을 거둔 누나의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내며 우는 류의 모습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또 설상가상으로 누나의 시신을 처리하던 중 유선이 사고로 인해 죽기까지. 유선의 시체가 발견되고, 부검을 하는 장면에서 동진은 차마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애꿎은 풀만 부여잡고 운다. 화장되는 유선의 관을 바라보며 동진은 지독한 복수를 다짐했을 것이다.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나온 듯한 물에 흠뻑 젖은 유선이 아빠에게 말한다. 수영을 더 일찍 배울 걸 그랬다고. 이렇게 순진한 유선의 모습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후에 나타나는 동진과 류의 모습과는 비교되는 점이기도 하다.

자신이 해고한 팽기사 가족의 처참한 최후를 보게 된 동진이 숨이 붙어 있는 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데려간 것은, 그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유선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로 가득 차게 된 그가, 우연히 류의 누나의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되고, 류가 누나의 사연을 라디오에 보내 채택이 된 적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류가 묻어놓은 누나의 시신을 발견하기까지. 하지만 영화는 이런 것들을 알아낼 수 있던 이유에 대해서 크게 설명하지 않는다. 류의 누나의 시신을 부검하는 장면에서 동진은 하품을 한다. 이 장면도 딸 유선의 부검 장면과는 너무나 대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들에게 사기를 쳤던 장기밀매업자들을 찾아 나서는 류와 영미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들을 찾아낸 류는 가차없이 모두 죽인다. 홀로 세 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신장을 꺼내 먹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류가 가진 증오가 폭발하여 분출된 가장 악한 장면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동진은 자신이 전기기술자 출신임을 이용하여 영미에게 전기고문을 하는 장면에서는 영미의 말대로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복수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미가 자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우리 조직 테러 단체가 아저씨를 죽일 거라는 말을 해도 그에겐 들리지 않을 뿐이다.
복수를 하고 돌아온 류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게 된 영미의 시신을 덮은 천이 내려가고, 류는 영미의 얼굴을 보게 된다. 흰 천속으로 손을 넣어 말없이 영미의 손을 어루만지며 류는 복수의 화살을 동진에게로 돌렸을 것이다.


두 사람의 쫓고 쫓기는 상황 끝에, 결국 동진에게 잡히게 된 류를 데리고 간 곳은 유선이 빠져 죽은 물속. 그곳에서 동진은 증오의 대상을 앞에 둔 채 한다는 소리가 참 우스꽝스럽다. 네가 착한 놈인 거 안다고. 그러니 내가 널 죽이는 걸 이해하지 않느냐고. 자신의 살인에 대한 합리화를 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죽은 류를 토막내 자루에 담기까지. 동진은 그때서야 복수의 마무리를 지어간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4명의 남자들에 의해 왼쪽 가슴에 칼로 판결문이 박힌 채로 죽어가는 그가 고개를 젖혀 그 내용을 읽으려 애쓰는 장면은 안타까우면서도 참 우스꽝스럽다. 류가 담긴 자루들을 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동진의 목소리를 음악 삼아 영화의 크레딧은 올라간다.

이렇듯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이 영화는 복수의 걷잡을 수 없이 되풀이되는 현상을 잘 그려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악순환이 이들의 연계성을 잘 드러내준다. 이렇게 영화는 처음부터 선악의 모호함을 지속적으로 말하는데 우리는 누가 더 나쁘다, 착하다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왜 그토록 착했던 사람들이 악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왜 그들이 이렇게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나 하는 의문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행한 것들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해낸다는 것에 접목시켜볼 수 있다.

주인공이 청각장애인인 만큼 이 영화엔 대사가 많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그가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고, 그렇기에 머리색으로나마 자신을 표현해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색의 이미지처럼 청렴할 것 같던 류의 모습이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변모되어 가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다. 이들이 벌인 복수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복수였기에 각자가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 악은 악으로 처단될 수밖에 없기에.
시리고 차가움을 잔뜩 안겨준 채 끝나는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의 특성을 정말 잘 나타내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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