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소수의 예술에 대하여

by STAYTRUE

레코드판과 함께 돌아가는 카메라는 이브(틸다 스윈튼)와 아담(톰 히들스턴)을 비추며 약간의 그로테스크함을 연출해 보이며 영화는 시작한다. 아담과 이브는 뱀파이어이고, 결혼 한 사이지만 떨어져 지내고 있다. 친한 친구 이안(안톤 옐친)에게 나무로 만든 총알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 총으로 자살하려는 아담은 뱀파이어인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듯하다. 우울해 보이는 그를 위해 아담의 곁으로 이브가 감으로써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아담과 이브는 각자 자신의 방법들을 통해 피를 공급받고 있었는데 아담은 닥터 파우스트(학문의 한계를 느끼고 절망 속에 자살하려다 영혼을 팔아 버리는 서양 희곡에 등장한 인물)를 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브는 자신들과 같은 뱀파이어인 말로우(존 허트)에게 순수 혈액을 공급받는다. 이렇게 이들은 사람의 피 없이는 살 수 없는 뱀파이어들이다. 이들은 수많은 세기를 지나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만큼 아는 지식도 많다. 이브는 여러 나라의 언어는 물론이고 책을 손으로 훑으며 읽을 수 있고, 아담은 슈베르트에게 곡도 준 적 있는 음악가이다. 이 둘의 성격은 극명히 갈리는데, 어둡고 은둔적인 아담의 성격과 현대적이고 긍정적인 이브의 성격은 화상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브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반면, 아담은 오래된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연결한다. 이런 둘의 머리색도 밝은 색과 어두운색으로 각자의 성격을 상징하고 있으며, 함께 두는 체스의 말도 그 둘의 캐릭터를 각각 환기시키고 있다.

행복하던 이들의 삶에 이브의 본능에 충실한 동생 애바가 불청객으로 오게 되고, 아담의 친구 이안을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이들은 애바를 쫓아내고 디트로이트를 떠나게 된다. 비행기 표를 예매할 때조차 자신의 실명을 쓰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주목해보면, 이브는 데이지 뷰캐넌이란 가명을 쓰는데 이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결국 물질을 택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영화는 계속해서 예술과 접목시켜 이야기를 관통시키는데, 문화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담과 이브가 수 세기에 걸쳐 끊이지 않고 탄생된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목을 물어 피를 먹는 것은 15세기에나 하던 짓이라며 애바를 꾸짖던 그들은 순수 혈액이 떨어지자 살기 위해서 아름다운 연인들을 먹잇감으로 삼기에 이른다.


영화는 이렇듯 뱀파이어의 일상생활을 그리면서 RH-O형 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소소한 재미를 그리기도 한다. 그들도 사랑을 하며, 사랑엔 권태를 느끼지 않지만 뱀파이어란 인생에 권태를 느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들을 좀비라 칭하는 아담은 결국 뱀파이어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좀비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굴레는 햄릿이 말과 같이 인간이 대단한 존재 같지만 내게는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나누는 원거리 작용의 이야기는, 그 둘은 서로 떨어져 우주 반대편에 있더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며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우주의 원리가 적용되는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밤을 무대로 하는 뱀파이어들의 이야기를 그린만큼 조도가 매우 낮은 영상임에도 영화는 메스껍지 않고, 자극적인 장면들은 배제한 채 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 같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만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닌 것 같아 대중성을 기대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예술성에 중점을 두며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60년생의 틸다 스윈튼과 81년생인 톰 히들스턴의 21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이 없던 영화였다. 특히나 틸다 스윈튼의 창백한 얼굴색과 뱀파이어라는 설정의 투사성, 나이가 무색할 만큼 매혹적인 모습에 감탄이 나오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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