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운명같은 만남을 믿으시나요
이건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이고,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며 시작되는 영화 <500일의 썸머>는 톰(조셉 고든 레빗)과 썸머(주이디샤넬)의 500일을 그린 영화이다.
톰이 일하는 회사로 썸머가 오게 되는 날이 1일로 시작한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헤드폰을 낀 채 밴드 smith의 노래를 듣는 톰에게 썸머가 말을 건네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만남을 이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데, 영화는 이런 과정을 시간 순서가 아닌 독특한 편집방식으로 표현해 낸다.
나레이션이 톰으로 진행되어 가니까, 우리는 당연히 톰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고, 결국 톰을 떠나가버린 썸머를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느 남녀관계처럼 좋았던 것도 한때였던 그들에게 찾아온 위기에서 썸머는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어본다. 괜찮다고 대답해버리는 톰의 모습은 굉장히 솔직하지 못하고 바보 같아 보였다.
사실 톰은 자기얘기만 할 줄 아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남자이다. 톰이 좋아하는 건축에 대해서 썸머는 더 알고 싶어하는 등 톰에게 관심을 보여주었지만, 썸머가 좋아하는 링고 스타의 노래를 보며 톰은 비웃어 버리곤 한다. 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톰의 눈치 없는 행동들(썸머에게 건축학 책을 선물한다던지, 주먹을 휘두르고 썸머를 위한 것이었다고 여긴다던지)은 보는 내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어린 여동생에게 연애 조언을 구하는 답답하고 미성숙한 오빠이다.
썸머는 둘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고 애매하게 지속해 나가려고 한다. 친구라고 하기엔 그 도를 넘어서는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톰에게 지금의 관계를 강요를 하는 것 같았다. love란 단어 대신 like란 단어를 쓰는 썸머를 보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썸머는 톰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관심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톰을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톰과 썸머 모두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던 것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연애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느냐만은, 서로를 통해 배워가야 할 텐데 그런 상호작용이 전혀 되지 않았던 관계였다. 그래서 이뤄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50일이 되던 날, <졸업>이라는 영화를 같이 보는 둘. 그 영화를 보고 우는 썸머를 보면 그녀가 졸업의 벤자민과 마찬가지로 톰 또한 현실성이 없는 불안정함이 있는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후에 톰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500일이 되던 날,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 대기 중인 여자가 말을 건네면서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그 여자와 면접 후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는 톰. 그 여자의 이름이 ‘autumn’인 것을 알게되고, 영화가 500일에서 1일로 바뀌며 끝나는 것처럼 운명적인 만남은 없다. 인연이라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 같다.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톰이 썸머를 자신의 운명의 여자라고 여기고 관계를 시작함에 있어서 더욱 실망하게 되고, 상처받게 되었던 것 아닐까. 톰과 썸머 모두 미성숙한 모습으로 인해 헤어짐을 이끌게 되었고, 그런 상흔을 안고 또 다른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