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희
의자에 앉아 탓꽃을 바라본다.
햇살이 꽃잎을 스치며 반짝일 때,
그녀는 오래전 아들에게 하지 못한 말을 떠올린다.
“그때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 이제는 그 미안함이 그저 무겁게만 남지 않는다는 걸 안다.
탓꽃이 피어난 자리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조금 더 부드럽게 바라본다.
팔연
정원 한쪽, 손에 작은 삽을 들고
흙을 다시 다지는 팔연.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형과 친구에게 상처를 준 순간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탓꽃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그 모든 게 나였고, 그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화해가 되는 거구나.”
그는 조용히 씨앗 하나를 심는다.
그 씨앗은 미안함과 용서가 섞인 작은 꽃이다.
도연
흙을 손바닥에 묻힌 채, 도연은 자신이 남에게 던진 말들의 무게를 느낀다.
“너 탓 아니야”라고 말하며 누군가를 위로했던 기억.
그 말이 때로는 진심이었고, 때로는 자기 방어였음을.
탓꽃을 바라보며, 그는 속으로 다짐한다.
“앞으로는 말보다 오래 남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탓꽃이 피어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을 용서한다.
재심
손에 물을 담아 탓꽃 위로 천천히 부어본다.
잡초였던 자리가 이제 꽃으로 바뀌었듯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탓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그 모든 탓은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뿌리가 되었구나.”
그는 눈앞의 꽃을 오래 바라보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정원 한켠, 네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존재를 느낀다.
탓꽃은 여전히 노란 꽃잎을 펼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자라는 건 단순한 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마주친 흔적이다.
햇살이 점점 길어지면서,
꽃과 사람 사이의 그림자가
서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과거의 탓, 말하지 못한 미안함,
속으로 삭인 분노와 서운함…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현희가 조용히 속삭인다.
“탓꽃을 돌보는 일, 결국 우리 자신을 돌보는 일이구나.”
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씨앗 심은 자리 위를 쓰다듬는다.
도연은 흙을 털며, 마음속 방어막을 조금 낮춘다.
재심은 물을 주며, 과거의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
그날 정원에는 탓꽃뿐만 아니라
이제 서로의 마음이 피어난 소리 없는 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