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라도 괜찮네
오늘은 아무도 탓을 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의 날씨였다.
재심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을 조용히 돌았다.
잡초는 여전히 곳곳에서 힘차게 자라고 있었고, 며칠 전 심은 탓꽃 옆에는 작은 풀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쫓지 않았고, 뽑지도 않았다.
그저 물을 주었다.
그날의 흙에 맞는 온도로, 그날의 마음만큼의 양으로.
현희는 늦게 일어났다.
잠이 깊었고, 어제 밤의 울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울음의 이유를 굳이 떠올리지 않았다.
“그땐 아팠고,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오전에는 김을 매고, 점심에는 친구들과 순두부찌개를 나눴다.
소소한 농담 속에서도 탓이라는 그림자는 없었다.
“누가 덜 짜게 했네.”
“누가 두부를 덜 건졌네.”
그 모든 말이, 그냥 흐르는 물소리 같았다.
팔연은 읍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늘 형 탓, 세상 탓, 시대 탓을 하던 입이 오늘은 잠잠했다.
“오늘따라 조용하네요.”
미용사가 웃으며 말하자
팔연은 가볍게 웃었다.
“가끔은 조용한 게 좋아서요.”
거울 속 표정도, 그 말과 함께 살짝 미소 지었다.
도연은 책을 읽다 말고, 정원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잠들었다.
한때, 그의 말들이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위로하려 한 자기 방어였음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는 굳이 그것까지 탓하지 않았다.
잠결에 들려오는 새소리가 오래된 비난처럼 멀리서 흩어져 갔다.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그럴 수도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다르게 살고 있지.”
정원 한가운데, 탓꽃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노란 꽃잎은 여전히 빛나고, 그 사이 잡초들은 자유롭게 자라 있었다.
그 장면이, 그 자체로 삶의 균형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재심이 조용히 말했다.
“이 정원, 잡초가 자라는데도 오늘은 괜찮네.”
현희가 맞장구쳤다.
“잡초는 원래 자라는 거잖아.
계속 뽑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팔연이 덧붙였다.
“잡초가 자란다고 꽃이 덜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잖아.”
도연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잡초는 그냥… 삶이지.
탓도, 그냥 삶의 일부였던 거고.”
네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정답은 없었다.
다만 오늘 하루, 아무도 누굴 탓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날 밤, 재심은 정원 끝에 앉아
흙을 손으로 만졌다.
잡초가 무성했지만, 그 속에 피어난 작은 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탓 없는 날도, 결국 하루의 꽃이구나.”
현희는 창밖 달빛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오늘은, 우리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웠네.”
팔연은 벤치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정원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내일도 이렇게, 탓하지 않고 볼 수 있을까?”
도연은 책을 덮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탓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우리가 탓을 덮어두었으니까.”
정원에는 여전히 잡초가 있었지만, 그 사이에서 꽃들은 한껏 피어 있었다.
그리고 네 사람의 마음도, 그 꽃들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