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면 놓치는 삶

두 눈 뜨고 사는 복

by Surelee 이정곤


영광군에 귀촌한 지 네번째 해가 지났다.
우리집 대문 앞에 산과 들이 펼쳐지고, 길가에 드러누운 풀잎마다 맺힌 이슬이 햇빛에 반짝인다.
이렇게 나는 영광에 살지만 여전히 영광의 하늘도 땅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햇빛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을 바꾸는지, 바람이 골짜기를 언제 돌며, 어떻게 풀잎을 쓰다듬는지, 꽃잎이 피었다가 바람에 져가는 속도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 시선이 오직 한 곳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파킨슨병이 내 신경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긴장하면 시선도 굳어지고, 어느 한 가지에 마음이 매달릴수록 주변의 풍경은 뒤로 밀려난다.
무언가 한가지에 집중한다는 건 나머지를 놓치는 일이다. 어떤 걱정이라도 내맘을 흔들어 놓는 순간 내 발걸음 옆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들국화를 놓치고, 한 조각 근심이라도 내 발목에 걸리는 순간, 그 발밑에서 흙을 나르는 개미의 행렬을 보지 못한다.
사람마다 이런 ‘신경을 움켜쥐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일에, 누군가는 건강에, 누군가는 자식, 돈, 사랑, 혹은 놓지 못한 관계에 집착한다.
그 집착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우리의 눈꺼풀 한쪽을 서서히 내려앉힌다. 그렇게 한쪽 눈이 닫히면 세상의 절반은 어둠 속에 가려진다.

내게는 어느새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되어버린, 영광에 살면서도 숲속의 합창도 보지못하고, 나무들의 화음도 듣지 못한다.
초봄, 논둑의 풀들이 솜털처럼 연초록을 틔우는 장면, 한여름, 장맛비가 지나간 뒤 마을 어귀에 감도는 짙은 흙냄새, 가을 저녁, 들판 위로 스며드는 햇빛의 황금빛 숨결, 겨울 새벽, 얼음 위로 번져오는 요란한 빛의 파문까지 다채로운 장면이 나를 스쳐 지나가지만, 내 눈은 그 절반을 놓친다.


영광군.
산과 바다를 품은 이 고장에는 백수해안도로의 길고 유려한 곡선이 있고, 불갑사의 고즈넉한 숲이 있다. 영광굴비의 짭조름한 맛이 아무리 입맛을 유혹해도, 자연 속 맛은 계절마다, 하루마다,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파도소리를 놓치고, 산에 사는 사람들이 새벽 산새의 노래를 듣지 못하듯, 내가 발 딛고 사는 영광의 땅에서 그 절반을 놓치며 사는 셈이다.
두 눈을 뜬다는 건 단순히 앞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감각의 숨을 고르고, 여유를 품는 일이다. 마음이 무겁고 손이 바쁘면, 눈은 멀쩡해도 보지 못한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발 딛고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행복을 누리는 최고의 성지다.
지금 나에게 영광이 나의 낙원이듯, 누구라도 자신이 사는 곳이 그대들의 영광이 된다.
두 눈 뜨고 사는 것, 그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