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인류가 오랫동안 가장 숭고한 가치로 삼아온 가르침이다. 멀리 있는 타인을 향해 따뜻한 손을 내밀고,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는 문명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위대한 구호같은 삶의 명제는 종종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무너진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 대신 폭력과 억압이 일어나는 모순에 대하여 내 친구가 의문을 제기했다.
'영광여성의 전화'에서 인권 활동가로 폭력 피해자를 돕고 있는 현희가 이런 질문을 했다.
“과연 이웃 사랑 이전에, 우리는 가족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실상>
현희가 상담실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은 늘 비슷하다고 했다.
밖에서는 존경받는 교사, 모범적인 직장인, 친절한 이웃으로 불리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아이의 두려움 앞에서 서슴없이 폭군이 되는 가장. 남들에게는 온화한 미소를 짓지만, 가족에게는 차갑고 날 선 언어를 퍼붓는 아버지.
가정 폭력 가해자들의 얼굴은 두 겹이다. 하나는 세상 앞에 드러내는 환하게 웃는 가면, 다른 하나는 집 안에서만 드러나는 어두운 그림자다.
현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웃에게는 좋은 사람인데, 가족에게는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 기묘한 이중성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강자에게는 순응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하려는 인간 본능이 드러난 사회적 병리이기도 하다.
<존엄>
가족은 단순히 사적인 울타리가 아니다. 인간 존엄과 권리가 처음으로 발현되는 최초의 무대이다. 존중과 배려가 뿌리내려야 할 가장 작은 숲이다.
그 숲이 황폐하다면, 이웃 사랑은 겉치레일 뿐이다.
사랑은 밖에서 안으로 밀려오는 강물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퍼져나가는 물결이다. 특히 가족사랑과 이웃사랑의 경계에는 인간 존엄의 빛이 있다.
집 안이 어두우면 아무리 창밖에 등을 걸어도, 그 빛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이웃사랑은 가족사랑이라는 심지에서 피어나는 불꽃이어야 한다.
<의미>
그렇다면 가족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고백이 아니다. 폭력의 고리를 단호히 끊고, 존중과 배려를 관계의 기본으로 삼는 일이다.
인권은 먼 곳의 선언이 아니라,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 속에, 두려움 없이 말을 건넬 수 있는 집 안의 공기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회 정의는 거창한 이념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아주 작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실천>
“네 가족을 존중하라.”
이 말은 결코 가족 중심주의로 좁혀진 편협한 윤리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 존엄과 사랑이 흘러나오는 샘물의 근원을 가리킨다.
사랑은 씨앗과 같다. 가족 안에서 심겨진 씨앗은 줄기를 뻗어 이웃을 향하고, 마침내 숲을 이루어 인류를 감싼다.
가족 존중에서 이웃 존중으로, 이웃 존중에서 인류애로 퍼져 나간다 .
사랑은 그렇게 안에서 밖으로, 작은 등불에서 큰 빛으로 번져 나간다.
"할 수 있거든, 네 가족을 존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