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 지금과 여기, 몰입과 산만
반끄릇 완디 리조트의 아침은 오늘도 파도 소리로 깨어났다.
바람이 밀어내는 바다 냄새 섞인 공기 속에서,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그 빛 위로 먼지들이 공중부양하듯 춤을 추었다. 고요하면서도, 어딘가 살아 있는 아침이었다.
이 평화 속에서도 삼총사의 하루는 일찌감치 분주했다.
재심은 새벽부터 장바구니를 들고 모닝마켓에 다녀왔다. 손에는 새우와 조개, 갓 잡은 생선, 그리고 파파야 같은 열대 과일들이 가득했다. 리조트 안에 새로 낸 한국식 카페 ‘바다 한 모금’의 첫 주말 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무조건 메뉴를 완성해야 해.”
재심의 눈빛은 불타고 있었다.
“손님들 입맛을 잡으려면, 바다의 맛에 한국의 정을 섞어야지. 매운 코코넛탕, 해조 비빔밥, 그리고 고등어김밥 세트! 어때?”
그녀의 말에 나는 감탄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곳 사람들 입맛엔 너무 자극적일지도 몰라. 천천히 반응을 보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때 창가에서 커피를 내리던 현희가 고개를 들었다.
“정곤 말이 맞아. 메뉴보다 중요한 건 ‘느낌’이야. 손님이 편히 머물 수 있는 온도, 향기, 그리고 마음의 속도. 오늘은 그걸 먼저 맞추자.”
재심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이내 말했다.
“현희야, 네 말도 맞지만… 지금은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 이 분위기 유지하려면 손님들이 다시 오게 만들어야 하잖아. 움직여야 해!”
그때였다.
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번개처럼 스쳤다.
“그렇지! 지금 몰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아. 행동이 곧 길이다!”
이동태였다. 그는 언제나 긴장감 속에서 생동했다.
하지만 잠시 후, 파도 소리처럼 잔잔한 다른 목소리가 밀려왔다.
“조급할 필요는 없어. 기다림이야말로 맛을 깊게 만든다. 커피도, 인생도 말이야.”
고정태였다. 그 특유의 낮은 톤은 마음의 결을 고요히 매만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주방과 창문 사이를 바라보았다.
재심의 손끝은 칼날처럼 예리했고, 현희의 손끝은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여전히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점심 무렵, 첫 손님이 들어왔다.
현지 부부와 어린 아이, 그리고 여행객 몇 명.
재심은 바쁘게 손님을 맞으며 주문을 받았다.
“오늘 추천 메뉴는 매운 코코넛탕이에요. 한국식 해산물 스프죠!”
그녀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하지만 아이는 매운 냄새에 코를 찡그렸고, 현지 부부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덜 매운 메뉴는 없나요?”
그 순간 재심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얼른 옆에 있던 과일 바구니에서 망고를 꺼내며 말했다.
“망고 샐러드를 즉석에서 만들어볼게요. 매운탕 대신 이걸로 가볍게 시작하시죠.”
현희가 내 말을 받았다.
“좋아요. 매운탕은 우리끼리 맛을 좀 조절해보자.”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님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 눈빛 하나로 공기가 달라졌다.
주방으로 돌아온 재심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까 내가 더 몰입해야 한다니까. 집중이 흐트러지면 실패해.”
동태의 목소리가 곧장 뒤따랐다.
“그렇다! 집중이야말로 모든 창조의 힘이지. 지금처럼 몰입하라!”
그러자 정태가 조용히 반박했다.
“하지만 몰입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지. 여유 속에서 비로소 맛이 완성된다.”
나는 결국 둘의 말에 교차되는 마음으로 재심 옆에 섰다.
“재심, 오늘은 조금만 느려가자. 우리가 완벽한 메뉴를 내기 전에, 이곳의 속도를 먼저 배워야 할 것 같아.”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해보자. 대신 내일은 다시 몰입할 거야.”
저녁이 되자, 바다는 다시 밀려왔다.
카페 문을 닫고 우리는 작은 테라스에 앉았다.
잔잔한 파도 소리, 달빛, 그리고 코코넛 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현희가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진 않았지만, 참 좋았어. 아이 웃는 얼굴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
재심이 물컵을 들며 웃었다.
“그래도 방향은 잡은 것 같아. 내일은 새로운 메뉴도 시도해 보자.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몰입은 길을 만들고, 여유는 길의 끝을 보여준다.
너무 깊이 빠지면 주변을 놓치고, 너무 멀리 서 있으면 중심을 잃는다.
우리는 지금, 그 사이를 걷고 있다.”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몰입처럼 밀려오고, 여유처럼 물러나며, 밤은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렀다.
“몰입은 삶의 깊이를 더하고, 여유는 그 깊이에 숨을 불어넣는다.”
적용 포인트
• 당신의 하루는 지금, 몰입 쪽으로 기울어 있는가, 아니면 여유 쪽에 서 있는가?
• 일에 몰입하는 동안 잃어버린 ‘지금 이 순간’의 숨결을 기억하고 있는가?
• 혹시 ‘산만함’이라 부르는 그 여백이, 창의의 씨앗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