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변화와 안정, 불안과 안심
반끄릇의 하루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는 메인 로드에서 시작된다. 비치로 이어진 그곳에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해안의 바람이 코코넛 잎을 흔들고, 완디리조트의 정원엔 새들의 울음소리와 파도소리가 교차했다.
정곤은 커피잔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 멀리 방갈로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허버트가 있었다.
올해로 일흔여덟. 독일에서 형사로 근무하다 은퇴 후, 거의 10년째 이 리조트에서 살아온 단골 손님이다.
그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정원을 산책했고, 저녁이면 해변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들고 노을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정곤에겐 하나의 풍경처럼 익숙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허버트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언제부턴가 그가 들고 다니던 카메라가 자주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아침 산책 후에는 숨을 고르며 벤치에 오래 앉아 있곤 했다.
어느 날은 카페 앞을 지나다가 재심이 그에게 “오늘도 바다에 안가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허버트가 한참 동안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날 밤, 정곤은 현희와 재심과 함께 늦은 차를 마시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허버트, 요즘 좀 달라졌지?”
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웃음이 예전 같지 않고,아무래도 외로움이 깊어진 것 같아.”
재심이 덧붙였다.
“외로움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대화가 끊기는 순간 찾아오는 거 같아. 그가 대화할 사람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정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손님들의 편안함을 챙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허버트에게 필요한 건 ‘리조트 주인’이 아니라 ‘이웃’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정곤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침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허버트를 찾아갔다.
“이 커피, 한국식이에요. 좀 진하죠?”
허버트는 웃으며 “하지만 따뜻하군요.”라고 답했다.
서툰 대화였지만, 그 짧은 대화가 허버트의 하루를 바꾸었다.
며칠 후에는 현희가 그를 카페로 초대해 팥빙수를 함께 먹었고, 재심은 허버트에게 한국식 부채를 선물했다.
“태국의 여름도 이 부채로는 견딜 수 있을 거예요.”
허버트는 그날 저녁, 방갈로 앞에서 부채를 펼쳐 들고 아이처럼 웃었다.
정곤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불안은 그림자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을 비추는 건, 누군가를 향한 작은 관심이다.
오늘 나는 허버트의 그림자를 조금 덜어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 마음의 불안도 조금 가벼워졌다.”
며칠 후, 허버트는 정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혼자가 아니란 걸 느껴요.
이곳은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집 같아요.”
정곤은 미소 지었다.
파도는 여전히 해안을 두드리고, 코코넛 나무는 바람에 흔들렸다.
삶은 여전히 변화하고, 불안은 여전히 스며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안심시켰다.
불안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미소에 녹아드는 것이다.
그리고 정곤은 그날 비로소 알았다.
‘완디리조트의 진짜 안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에 있다’는 것을.
적용 포인트
“당신 주변의 허버트는 누구인가?”
“오늘,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 작은 커피 한 잔을 건넬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