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늙음 사이

문화의 벽

by Surelee 이정곤



철학자 박구용 선생이 6년전에 <월간 김어준>에서 했던 철학강의를 들었다.
기억을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다.
젊음이 늙음을 밀어낸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페이스북 대신에 인스타그램으로 갈아타서 문화적 차이를 과시한다.
나이든 사람들이 노는 곳을 피해서 젊은이들의 무대를 자꾸 만들어 낸다.
예전에도 그런 예는 있었다. 노래방이 생겼을 때 젊은이들이 열광하다가 장년들의 무대가 되니 다른 것을 찾았다.
늙은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젊은이들이 그들만의 은어를 만들고 문화적 장벽을 세운다.
젊음과 늙음을 이렇게 해석한다. 젊음은 젊다(동사)라는 어떤 특정한 상태를 보여주는 의미로 생겨났고, 반면에 늙음은 늙다(동사)라는 진행을 나타내는 단어란다.
젊음(Youth)이라는 명사 그 자체로 많이 쓰이지만, 늙음(Aging)이라는 명사는 없다. 젊음의 반대어는 늙은이가 어울린다.
이처럼 상태(젊음)와 진행(늙음)의 차이에서 시간의 속성을 주목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3시간 동안 데이트를 했다. 연인들이 공유한 양적 시간은 3시간이지만, 질적 시간은 1시간처럼 짧아지거나 6시간처럼 길어질 수 있다.
양적시간은 계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하지만, 질적시간은 상대적으로 체감이 다르다.
늙음, 즉 나이들어감에 있어서 흔히 양적 시간으로 규정하고 그 진행을 측정한다.
이처럼 삶을 양적시간으로 진단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대신에 늙음에 관하여 질적시간으로 비춰보는 역발상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