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기분좋아지는 아침이다. 오늘 또다시 내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어쩜 그렇게 오랫동안 눈이 깜빡거리지 않을 수 있죠?”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나는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이 밀려올 때도, 열등감이 소나기처럼 퍼부을 때도,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경직될 때도 나는 눈을 부릅뜬 채 ‘괜찮다’고 버텼다. 부정적 상황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지만, 태도는 단 3초면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의도적인 눈깜빡임은 나에게 하나의 자기암시다. 도망이 아니라 정렬, 포기가 아니라 재배치. 눈깜빡임은 항복이 아니라 선택이다. 식사모임에서 내 말이 힘없이 흩어질 때, 가까운 사람의 무심한 말이 가슴에 박힐 때, 열등감이 소나기처럼 퍼부을 때, 나는 종종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있었다. 세상을 똑바로 보겠다는 자세였지만 실은 세상에 붙들린 채 얼어 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3초. 그 순간은 역발상의 여유다.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시 뜬다. 그 짧은 어둠 속에서 세상은 잠시 멈춘다. 평가도, 비교도, 불안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검열하지 못한다. 그 3초는 오롯이 나만의 영토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말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선택한다.” 여기에 작은 동작을 더한다. 손바닥을 빠르게 뒤집는다. 위로 향하던 손등을 아래로, 아래로 향하던 손바닥을 위로. 그것은 보이지 않는 나의 선언이다. 받아내기만 하던 태도에서 흘려보내는 태도로, 억눌린 반응에서 주도적인 선택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여유찾기' 선언이다. 눈을 깜빡이면서 손바닥을 뒤집는다. 어둠과 전환이 동시에 온다. 이 두 동작을 함께하면 몸이 먼저 나를 설득한다고 확신한다. 마음은 늦게 따라온다 해도 지금이 반전의 순간이라는 것을 내몸은 이미 알고 있다. 다중의 대화 순간, 예상치 못한 소외감 앞에서, 슬픔이 이유 없이 번질 때, 무기력감이 하루를 잠식하려 할 때— 내 눈을 깜빡이고 내 손바닥을 뒤집어서 상황을 기필코 반전시키겠다는 자기암시를 한다. 그 3초 동안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관찰자다. 그리고 선택자다. 상황은 그대로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달라진다. 상황반전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면의 방향 전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눈깜빡임은 짧은 혁명이다. 손바닥 뒤집기는 나의 작은 선언이다. 그 3초의 어둠과 전환 속에서 나는 또다시 나의 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