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 정리 중이다

생각이라는 착각

by Surelee 이정곤


생각이라는 착각



“생각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나는 것이 생각이므로 생각을 하지 않는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학생 때 우연히 들었던 이 문장은 이상하게도 내 입술에 붙어버렸다. 일부러 외운 적도 없는데 세월이 지나도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그때는 그저 말장난 같았는데, 요즘은 그 문장이 자꾸만 되돌아온다.

생각이 많아져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세상은 생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눈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의 생각.

그러나 나는 이제 조금 삐닥한 시선으로 구분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 머무는 생각과 스쳐 지나가는 생각.

마음이 하나의 방이라면, 생각은 그 방을 채우는 잡다한 사물과 같다. 어떤 것은 벽에 걸린 장식품처럼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어떤 것은 늘 사용하는 의자처럼 매일 몸을 기대게 된다. 처음에는 작게 들어왔지만, 어느새 방의 분위기를 바꾸어 버리는 것들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운동신경이 좋다고 착각을 했다.

군대시절 훈련소 유격훈련 날,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고 통나무를 건너며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던 기억. 흙먼지와 고함 소리 속에서 나는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날 이후 ‘나는 운동신경이 좋다’는 생각이 내 마음의 방 한가운데 놓였다.

나는 그 생각과 함께 오래 살았다.

하지만 내몸에 파킨슨병이 찾아온 뒤, 계단 앞에서 머뭇거릴 때가 많다. 예전 같으면 두 칸씩 오르던 계단을 약효가 떨어질땐 난간을 잡고 한 칸씩 오른다. 발끝의 균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숨이 조금 빨리 찬다. 모든 신경이 마비됐거나 최소한 잠을 자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그 순간, 내마음의 방 한가운데 놓여 있던 생각이 조금 작아졌다.

내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건강이라는 조건이 나를 받쳐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착각은 생각과 쌍둥이 형제다.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그 순간의 상태 위에 세워진 해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마음을 하나의 그릇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마음의 방 안에 사물을 들여놓는 일과, 마음의 그릇에 음식을 담는 일은 닮아 있다. 무엇을 들일지, 무엇을 담을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둘지 선택해야 한다.

생각은 결국 생각일 뿐이다.

그릇에 담겼다고 모두 양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은 나를 단단하게 하는 밥이 되고, 어떤 생각은 달콤하지만 금세 탈이 나는 음식이 된다. 오래 담아두면 상하는 음식처럼, 오래 붙들면 굳어버리는 생각도 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떠돌고 있는가. 떠오르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몸의 움직임과 연결될 때, 비로소 삶이 된다.

실행 없이 방치된 생각은 차갑게 식어버린 죽은 생선과 같다. 형태는 남아 있지만 방치된 생각은 더 이상 숨 쉬지 않는다.

나는 한때 ‘나는 잘한다’는 생각을 오래 씹었다. 그 생각은 나를 지탱해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둔하게 만들었다. 건강의 고마움을 깊이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이 들어오면 묻는다.

이 생각은 마음의 방 안에 들여놓을 만한가.

이 생각은 마음의 그릇에 담아 몸으로 삼킬 만한가.

나는 이제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 둘 생각은 천천히 고르고, 몸으로 옮길 생각만 가까이 둔다.

오래전 그 말장난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생각을 하지 않는 생각이 좋은 생각이다.”

이제는 이렇게 들린다. 생각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생각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으로. 방을 가득 채우지 말고, 그릇을 넘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는다.

오늘도 나는 마음의 방을 조금 비워두고, 그릇을 절반만 채운다.

혹시, 살아 있는 생각이 채워질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