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찾는 게으른 변명
말은 씨앗처럼 늦게 싹을 틔운다.
내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
“어쩜 그렇게 오랫동안 눈이 깜빡거리지 않을 수 있죠?”
그때는 웃으며 넘겼지만
태국의 강한 햇빛 아래서 그 말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반끄릇에 있는 동안 우리 리조트 로비에서 다양한 많은 얼굴을 맞이한다.
나의 마음은 환대로 가득 차 있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은 생각보다 굳어있다.
웃음이 안에서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나는 이유를 곱씹다가 문득 그녀가 말했던 눈 깜빡임이 떠올랐다.
눈을 깜빡인다는 것은 잠시 세상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일.
카메라 렌즈처럼 노출을 조절하여 빛을 적당히 비추는 행위이다.
빛을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받아들이는 선택이다.
어쩌면 그 짧은 어둠은 멈춤이 아니라 여유를 되찾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쉼표 하나 찍고 다시 문장을 이어가듯,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사람을 바라보는 일.
눈깜빡임은 나를 다그치던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의 간격을 확보하는 작은 여백이다.
그런데 깜빡임은 단지 생리적 반사가 아니다.
도로 위에서 신호등의 깜빡거림은 “주의하라”는 메시지다.
속도를 낮추고, 주변을 살피고, 조심하라는 조용한 경고.
차량의 비상등이 켜질 때 그건 고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길을 양보해줘서 고맙다는 뜻, 먼저 지나가라는 배려, 잠시 멈추겠다는 알림.
깜빡거림은 위험과 배려를 동시에 품은 언어다.
나는 그 사실을 내 얼굴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손님을 바라보다가 의식적으로 눈을 감는다.
아주 짧게, 그리고 다시 연다.
그건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지금, 속도를 늦춰.”
“지금, 더 부드럽게.”
“지금, 환대의 표정을 열어.”
“지금, 여유를 찾아.”
눈깜빡임은 그 찰나의 어둠 속에서 얼굴의 긴장이 풀리고 입가에 공기가 스민다.
신기하게도 그 다음 순간 웃음은 애써 만들지 않아도 조용히 따라온다.
깜빡임은 내 안의 교통신호다.
무표정으로 과속하려는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노란 불.
마음의 길목에서 켜지는 작은 비상등.
동시에 나를 숨 돌리게 하는 짧은 쉼표,
여유를 회복하는 가장 작은 훈련.
나는 이제 사람을 오래 응시하기보다 적절히 깜빡인다.
열고, 닫고, 다시 연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더 안전해지고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따뜻해진다.
말은 언젠가 작용을 한다.
그녀의 한마디는 지금 내 눈꺼풀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빛을 내고 있다.
이것이 경직된 내 얼굴에 웃음을 찾기 위해
나무 젓가락을 입에 물기에 이어서 시도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