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선긋기 연습

존재를 그리는 기술

by Surelee 이정곤



내게 ‘선긋기’라는 통찰의 문을 열어준 분이 있다.
윤철현 선생님.
전직 고등학교 미술교사이자, 은퇴 후에도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여전히 그림으로 삶을 채워가는 분이다.
나는 그의 펜화에 홀딱 반했었다.
처음엔 그림이라기보다, 차라리 침묵의 소리를 그려낸 선들처럼느껴졌다.
정지된 듯 흐르며 화면 위를 걷는 선들 속에는 말보다 깊고 다채로운 감정이 살아 있었다.

어느날 그가 나를 문구점으로 데려갔다.
선긋기 연습용 펜을 직접 골라 사주시며 말했다.
“좋은 선은 손보다 마음에서 나와야 해.”

그는 단호하되 따뜻하게, 정확하지만 부드럽게 내게 선긋기를 가르쳐주었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선은 뻗는 것이 아니라 ‘닿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직선은 단호함을, 곡선은 여백과 흐름을 품고 있었다.

삼각형, 원, 사각형을 그리며 나는 단순한 도형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감정과 사고, 기억의 결들을 하나씩 직면해 나간 셈이었다.

처음엔 단지 손놀림의 훈련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것은 내 마음을 다듬는 연습이 되었다.
급하게 긋지 않기.
억지로 꺾지 않기.
멈춰야 할 땐 멈추기.

그렇게 선은 내 안의 질서를 찾아주었고,
나는 그제야 ‘삶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선은 단지 궤적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가르고 또 연결하는 질서의 언어였다.

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선을 긋는다는 것’의 의미를 사유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그리기의 기술이 아니었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 자체였다.

누군가와의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말은 흔히 차갑고 단절된 행위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윤 선생님의 눈에서 번뜩이던 빛을 기억한다.
선긋기는 존재의 온도를 지키는 섬세한 조율이며,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는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계와 접촉하며 살아간다.
피부는 외부와 나를 가르는 첫 번째 선이고,
언어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그어지는 보이지 않는 선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마음속으로 선을 긋는다.
이것은 나의 일, 저것은 타인의 일.
이곳은 내가 머물 공간, 저곳은 물러서야 할 자리.

선을 긋는다는 것은 곧 자리를 정하는 일이다.
그 자리는 물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 정서적 거리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는 태도는 때로 연대가 아니라, 자기 소멸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하게 된다.
“이제는 여기쯤에서 선을 그어야겠다.”

예술도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렇게나 흩어진 선은 낙서지만,
균형과 의도를 지닌 선은 예술이 된다.
문장도, 그림도, 심지어 침묵조차도 선을 품는다.
그림자는 빛과 어둠 사이에 그어진 선이고,
한 사람의 인생 또한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무형의 선을 긋는 행위로 구성된다.

“선을 긋는 건, 사라지기 위함이 아니라 드러나기 위함이야.
가장 단순한 선이 가장 명확한 메시지를 주기도 하지.”
윤선생님의 말은 오랫동안 내 안에 철학적 사유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선긋기는 단절이 아니라, 의미를 정제하는 과정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망치지 않기 위한, 따뜻한 거리감이라는 성찰이다.

그의 가르침은 단순하지 않았다.
선은 단단하되 유연해야 한다.
너무 뻣뻣하면 고립되고, 너무 흐릿하면 침범당한다.
그 사이 어딘가, 적당한 온도의 선을 긋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품위 있게 살아가는 미학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든 것을 잃는다.
관계도, 말도, 몸도 사라진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나의 세계를 한 줄 한 줄 그으며 살아간다.
때론 직선으로, 때론 굴곡진 곡선으로.
그 선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을 그리는 거대한 드로잉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내가 그어온 모든 선이
누군가에게 하나의 따뜻한 선물로 남기를 바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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