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삶 — 이질성의 조화를 살아내는 법
통섭의 삶 — 이질성의 조화를 살아내는 법
살아가는 일은 결국,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 다른 배경, 다른 상처와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이질성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껴안고 살아내는 방식이다. 통섭은 서로 다른 흐름들이 만나, 하나의 조화로운 강을 이루는 삶의 지혜다.
현희는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에서 지역 내 남성 자원봉사자들과 협업할 기회를 얻었다. 초반에는 갈등이 많았다. 남성 자원봉사자들은 ‘피해자들이 너무 예민하다’고 말했고, 피해 여성들은 ‘남성 자체가 두렵다’고 반발했다. 현희는 양쪽 모두를 따로 만나, 오랫동안 대화했다. 각자의 삶을 듣고, 입장을 전하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긴장이 누그러졌다. 어느 날, 한 여성 참여자가 말했다. “그 오빠, 이제 나한테 커피 줄 땐 눈 피하지 않아요.” 작은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름이 통섭으로 나아가는 시작이었다.
정곤은 마을신문에 기고하는 한 글에서 ‘공존의 글쓰기’를 제안했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상대방의 글을 읽고 편지를 주고받는 실험이었다.
중학생 소녀가 쓴 환경 걱정의 글을 읽은 70대 할아버지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비닐봉지 없인 살 수 없었는데, 너의 글을 읽고 내 삶이 조금 무거워졌단다. 그 무거움이 고맙다.” 세대의 차이, 인식의 간극, 언어의 틈이 있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따뜻한 교류가 있었다. 다름이 겹치며 더 넓은 이해가 만들어졌다.
재심은 병원 행정 팀에서 의사, 간호사, 보험 심사 담당자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 자주 나섰다. 각자의 입장은 분명했고, 절박했다. 그러나 각자 자기 언어로만 말하고, 자기의 논리만 내세우면 어떤 협력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재심은 말 대신 ‘그림’을 도입했다. 환자의 입장에서 하루를 시각적으로 구성해보는 워크숍이었다. 각 직군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한 명의 환자를 따라가며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을 벽에 걸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각자 다르게 일하지만 결국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거네요.” 한 간호사의 말이었다. 그 말은 팀 전체에 울림이 되었다.
통섭은 조화롭게 섞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빛깔을 유지한 채 어울리는 것이다. 그것은 설득이 아니라 존중에서 시작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내 안에 들어와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태도.
우리는 누구도 똑같지 않기에, 통섭이 필요하다. 이질성은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일 수 있다. 삶이란 결국, 조화롭고도 복잡한 통섭의 예술이기 때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