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은 독자의 삶 속에 ‘통(通)’의 개념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장이다. 그동안 다뤘던 통일감, 통로, 통섭, 통합, 통생 등의 개념이 삶 속에서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 살펴보고,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한다.>
통로 — 상처와 회복 사이의 길을 만들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건너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상처는 때로 사람을 닫게 만든다.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고, 어느 누구도 통과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통(通)은 닫힌 마음에 길을 내는 행위다. 통로는 스스로 만든 회복의 통과지점이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길.
현희는 상담소에서 만난 여성 내담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랜 시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이 여성은 말이 없었다. 눈빛도, 손끝도 얼어붙은 사람처럼 조용했다. 현희는 그저 그 곁에 앉아 있었다.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말 없는 시간을 함께 견뎠다. 몇 주가 지나고, 그 여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매일 여기 있다는 게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요.” 그 한마디는 닫혀 있던 마음 속에 생긴 조그마한 통로였다. 회복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조용히 이어지는 존재의 흐름으로부터 시작된다.
정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그 남성은 처음엔 늘 교재만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곤은 그에게 조용히 쪽지를 건넸다. “어느 하루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써보시겠어요?” 며칠 후, 그 남성은 단 한 문장을 써왔다. “어머니가 내게 끓여준 마지막 된장국, 지금도 냄새가 나요.” 정곤은 알았다. 그 문장이 바로 통로였다. 오랜 고립과 상실의 방 안에 누군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생긴 것이다.
재심은 병원에서 마음이 극도로 예민해진 보호자와 마주할 때마다, 자기 안의 방어 기제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린 딸의 병세에 대해 울먹이며 질문하는 어머니를 마주했을 때, 그녀는 마음을 바꾸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예요. 제가 오늘만큼은 엄마의 편이 되어드릴게요.” 그 말에 보호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고통은 이해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다시 걸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통로는 어느 날 갑자기 열리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기다림, 귀 기울임, 조심스런 발걸음들이 반복될 때, 언젠가 길이 난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삶 속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간다. 닫힌 마음에 다가가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진심은 언젠가 작은 문을 연다.
상처는 끝이 아니라, 통로의 시작일 수 있다. 그 길을 먼저 낸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따라 걷는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지나는 길’이 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