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탓이라는 잡초

희심원의 잡초

by Surelee 이정곤

탓이라는 잡초


현희는 오늘도 장갑을 끼자마자 허리를 굽혔다.

등은 땅으로 끌리듯, 어깨는 삶의 무게에 눌린다.

손끝이 흙을 스치며 작은 알갱이들이 손바닥에 달라붙는다.

“아니, 얘는 어쩜 이렇게 끈질겨?”

손아귀에 잡힌 풀 한 뿌리가 땅속 뿌리를 버티며, 여전히 반항하듯 단단하다.

곁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풀을 뜯던 재심이 작게 웃는다.

“그거… 탓이야.”

“탓?”

“응. 그 잡초 이름.”

햇살이 이마를 때리고,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당 가득 여름의 열기가 퍼지지만, 두 사람의 웃음은 바람결처럼 시원하다.

현희네 마당은 계절 따라 매번 다른 표정을 짓는다.

봄이면 민들레 솜털이 바람에 흩날리고,

여름이면 장맛비에 잎들이 한껏 몸을 불린다.

가을엔 누렇게 마른 풀들이 바스락거리고,

겨울이면 땅속에서 조용히 숨 쉬는 뿌리의 감촉이 느껴진다.

매일 가꾼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잡초 하나를 뽑고 나무 둘레에 거름을 덮으면

손바닥에 남은 흙 냄새와 따스한 촉감만으로 마음속 먼지 한 겹이 닦이는 기분이다.

재심은 정원일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한다.

작은 풀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잎사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

뿌리가 흙을 뚫고 퍼지는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마치 마음속 상처 자국을 살피듯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녀의 삶에는 늘 자기 탓이 먼저였다.

세상의 무게를 홀로 짊어져야 한다는 고집 같은 마음.

남들은 그녀를 신뢰했지만, 그 신뢰만큼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어깨에 얹혔다.


현희 역시 젊은 날, 참 많이 남을 탓했다.

무관심했던 부모, 무책임한 남편, 서운했던 친구들.

그리고 결국 자신을 원망했다.

“그때 조금만 더 단호했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 냈더라면…”

그 말은 마음속에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처럼 다시 올라왔다.

남탓과 내탓이 서로 얽혀 뿌리내리던 시절,

그 기억은 아직도 마당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잡초는 참 신기해.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

현희가 흙 묻은 손을 털며 중얼거렸다.

“맞아. 특히 이놈의 ‘탓’이라는 잡초는 더 그래.”

재심이 장갑을 벗으며 대답한다.

“남탓은 쉽게 자라고, 내탓은 쉽게 시들지.”

“그래서 둘 다 자꾸 커져버리는 걸까?”

잠시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스쳤다.

살결을 스미는 바람에 흙먼지가 날리고,

마음속 묵은 감정까지 털어내는 듯하다.

풀잎이 바람에 스치며 내는 사각거림,

새소리가 머리 위 나무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오후.

사람의 마음에도 늘 무언가가 자란다.

꽃일 수도, 잡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아도 먼저 피어나는 것은 대부분 잡초다.

특히 ‘탓’은 뿌리가 깊다.

남탓은 순간의 위안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믿을 수 있어 자존심이 잠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그 위안은 오래가지 않는다.

남탓이 쌓이면 삶의 핸들을 놓치고,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피해자가 된다.

내탓은 불편하다.

스스로를 향한 시선은 따갑고, 손끝이 저릿할 정도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견디고 나면

그 자리에 자유가 남는다.

내가 원인이라면 바꿀 수 있는 것도 나다.

내가 책임진다면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

내탓은 죄책감이 아니라 성찰의 시작이다.

그날 오후, 현희는 ‘탓’이라는 잡초 뿌리를 힘겹게 뽑아내다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있지, 이 잡초도 이제는 너무 익숙해.”

“나도 그래.” 재심이 대꾸한다.

“근데 신기하지 않아? 예전엔 뽑으면서 화가 났는데, 요즘은 그냥… 바라보게 돼.”

잡초를 뿌리째 없애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 정원을 가꾸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자주 들여다보고, 모양을 살피고,

언제 뽑아야 할지 감각하는 것.

그만으로도 삶은 조금 더 평화로워진다.

잡초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손길이 닿는 정원은 황폐하지 않다.

탓도 마찬가지다.

그 감정이 다시 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돌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여전히 자라날 수 있다.


마당 한쪽에 무성한 풀더미가 흔들린다.

바람에 스치며 작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현희는 손으로 스친 풀잎의 촉감을 느끼며 그 그림자를 바라본다.

잡초 같기도 하고, 지난날의 후회 같기도 한 그 흔적들.

그러나 잡초가 있어도 꽃은 피고, 탓이 있어도 삶은 자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