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뽑아도 또 나는 그것

. 뽑아도 또 나는 그것

by Surelee 이정곤


2편. 뽑아도 또 나는 그것

“형, 그 얘긴 이제 그만 좀 하지.”
팔연이 일손을 멈추고 도연을 째려본다.
땅에 깊게 꽂은 손이 떨려 흙이 우수수 흩날린다.
“내가 틀린 말 했냐?”
도연은 늘 그렇듯 진지한 얼굴이다.
그 얼굴은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변하지 않는다.
“틀린 건 아닌데, 왜 맨날 똑같은 말을 하냐고.”
팔연의 목소리에 피곤한 숨결이 묻어난다.
희심원 정원 모임이 열리는 토요일 오후, 잔잔하던 공기는 형제의 대화로 금세 무거워진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맞는 말’로 시작해 감정 싸움으로 끝난다.
팔연은 현실적인 말을 꺼내고,
도연은 철학적인 견해를 덧붙이고, 결국 서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은 어릴 때부터 그래.
누구 잘되면 꼭 뒷말을 붙이잖아.”
팔연이 쏘아붙인다.
“그건 팩트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도연은 정색하며 말한다.
“팩트든 뭐든, 이제 좀 놔줘.
지겹지도 않냐고, 그 얘기.”
말끝이 날카롭게 튕겨 나가고,
잠시 정원의 공기가 싸늘해진다.
풀잎에 걸린 햇살조차 한순간 멈춰 선 듯 고요하다.
팔연은 도연과 살짝 거리를 두고 앉는다.
잡초를 뽑으며 속으로 되뇐다.
‘그놈의 탓.
형은 세상만 봐도 누구 탓부터 시작이야.
사람이 그렇게 안 변해.’
하지만 곧 깨닫는다.
자신 역시 형을 탓한다는 것을.
그걸 몇십 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을.
“형이 그때 그랬잖아.”
“형이 아버지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형이 먼저 나 몰아세웠잖아.”
그 탓의 나무는 줄기가 굵고 가지가 많다.
해마다 더 넓게 자라,
때로는 그늘이 되어
자기 자신조차 숨게 만든다.
정원 가장자리에는 이상하게 자꾸만 자라는 풀이 있다.
겉보기에 파랗고 연한 잎사귀지만, 뿌리가 옆으로 넓게 퍼져 있어 한 번 뽑아도 다시 돋아난다.
재심이 그 풀을 가리키며 말한다.
“얜 뿌리를 하나만 뽑으면 안 돼.
옆으로 뻗은 것까지 같이 찾아야 돼.”
“귀찮네.” 팔연이 중얼거린다.
“마음속 탓도 그런 거 같아요 .” 재심이 덧붙인다.
“표면만 뽑으면 또 나요.
기억 너머에 얽힌 감정들까지
같이 봐야 사라져요.”
팔연은 말없이 흙을 만진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흙냄새가 묘하게 오래된 기억을 건드린다.
자꾸만 도연이 떠오른다.
형은 언제나 지나치게 아는 척했고, 자기 말이 틀릴까 봐 눈치를 보았다.
팔연은 그런 형이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정원에 형이 없으면
적막이 스며들어 어쩐지 허전했다.
“형은 변하지 않아.”
팔연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나라도 변해야지.”
그 말에 현희가 웃는다.
“그게 뿌리 자르는 거지.”
“아니, 뿌리를 안 자르고 키우는 걸지도.”
뒤에서 도연이 끼어든다.
“그 탓을 그냥 같이 키우는 법도 있지 않겠어?”
팔연이 눈을 흘긴다.
“그러다 정원에 잡초만 남겠다.”
가끔은 뽑아도 또 나는 것들이 있다.
잡초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다.
어쩌면 그건 사라지라는 뜻이 아니라 조금은 함께 살아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도연과 팔연은 말다툼을 하면서도 늘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
그건 누가 먼저 사과했는지,
누가 더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도 기대고 있다는 증거다.
“이거 봐.”
팔연이 한 덩이의 뿌리를 꺼내 보여준다.
“세 개가 얽혀 있어.
이게 하나처럼 보여도…”
“이름 붙여볼까?” 도연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하나는 네 탓, 하나는 내 탓,
하나는 그냥 시간이었겠지.”
“그래, 그럼 이제 뭐해?”
“심을까? 말릴까?”
재심이 말없이 손을 내민다.
그 뿌리를 받아든 그녀는
묵묵히 흙에 다시 묻는다.
“오늘은 그냥, 덮어두자.”
탓을 뽑을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탓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마음의 정원을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다.
바람이 불어와 풀잎을 흔든다.
서로에게 걸려 있던 오래된 말들이 흙먼지처럼 흩날린다.
그 순간만큼은, 잡초도, 탓도,
조용히 숨을 고른다.